저가 이보다 낫다(彼善於此)
저가 이보다 낫다(彼善於此)
  • 고주환
  • 승인 2020.04.04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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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주환 (사)공주시마을공동체네트워크 이사장
고주환 이사장 ⓒ백제뉴스
고주환 이사장 ⓒ백제뉴스

 

지난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격변의 시대였다.

한 세대가 농경시대를 거쳐 산업사회와 정보화 사회를 몸소 경험하고 4차 산업으로 진입하는 미증유의 변혁의 시대였다. 그러한 변혁을 견인한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였으며 그 철학적 기조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였다.

그 속에서 우리는 편리함과 풍요를 얻었고 인간의 본질적 바탕인 사랑과 신뢰와 존경의 터전인 공동체를 상실하였다. 즉 인간관계의 가장 핵심인 가족 공동체와 삶의 터전인 마을공동체와 지역사회 공동체를 잃었다. 법과 계약을 기초로 한 법인(기관·단체·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변혁은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양극화와 저출산, 청년실업, 노인문제, 청소년 문제, 약물오남용 문제, 자살 문제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했다. 그렇다면 합리라는 철학적 토대에서 출발한 법과 계약에 의한 운영제도가 왜 이러한 문제를 초래했을까?

그 원인은 자본주의와 관료제가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운영하면서 철저히 헌법의 근본정신을 붕괴시킨 데에 기인한다. 자본주의는 자유주의를 토대로 한 무한의 이익추구가 근본 목적이며 관료제는 승진이 주목적이다. 승진 또한 이익추구이다. 이렇게 끊임없는 이익추구는 거대한 블랙홀로 작동하여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여 황폐화시킴에도 멈추지 못하는, 방향을 상실한 채 무한궤도를 달리는 괴물 열차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헌법에 명시한 주권재민이 주권재이익과 주권재승진으로 흘러감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이 땅의 주권자는 방관자 내지는 피지배자로 전락하고 자본가와 관료가 주권자가 되어 그들이 배출한 난마처럼 얽힌 시대의 문제점을 땜질식(補空塞罅) 처방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매일 시끄럽고 부산하지만 실효는 없다. 이미 그들은 개혁의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정부 이기주의, 각 부처 간 이기주의, 각 단체 간 이기주의, 기업의 이기주의, 가족의 이기주의, 개인의 이기주의 등 이기주의는 이 시대 어느 곳에서나 만연하는 전염병이다.

그러니 인간의 존엄성, 인간답게 살 권리, 행복추구권 등을 실현할 책임을 지닌 기관·단체·기업은 없다. 심지어 교육마저도 이권쟁탈의 도구와 이를 합리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으니, 우리 국민은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든 365일 이권쟁탈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의 정치는 이를 부채질하고 방관하였으니, 그 죄질이 더욱 가증스럽다. 우파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제발전, 좋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경제발전 결과 어느 계층, 어떤 연령대가 행복하고 삶의 질이 향상되었단 말인가? 입만 열면 복지, 입만 열면 경제, 그 정도면 우리 사회는 이미 지상낙원이 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아이는 보육원으로, 노인은 요양병원으로, 청소년은 입시경쟁으로, 대학생은 취업전쟁으로 내몰리며 전 국민이 분주하다. 정치, 관료, 자본이 짜놓은 법과 제도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 이익이 될까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경제동물이 되었다.

60대가 학창시절에 가장 비난했던 것이 “일본은 경제 동물이다.” “북한은 천리마 운동과 샛별보기 운동으로 아이는 탁아소에서 자란다.”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보다 더하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나서서 잘못된 시스템이니 바꿔야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없다.

지난 70년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타락하고 추악할 수 있는가를 서로 경쟁하며 살아왔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자는 이권쟁탈의 승리자로 현대사의 이권쟁탈의 도구적 존재로 살아왔으며 패배자는 그들의 보조자로 전락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이권쟁탈의 각축장에서 살아왔으니, 누가 누구를 욕할 것이며 누가 누구를 좌파라 하며 우파라 할 것인가? 좌나 우나 헌법 질서를 붕괴시킨 장본인임은 대동소이하다. 물론 사안별로 彼善於此(저가 이보다 낫다)는 있을지 몰라도 오십보백보이기에 누가 누구를 나무랄 입장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을 세우고 대립적 구도에서 무여지하게 비판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웃긴다고 하겠다. 속된 말로 지나가는 개도 웃을 지경이다. 이 또한 이권쟁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