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통성과 배려
융통성과 배려
  • 지희순 정산중학교 교장
  • 승인 2007.07.2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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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어린 딸에게, “파 한 두어 뿌리 뽑아 와라.” 한다. “한 뿌리?  아니면 두 뿌리?” 하고 묻는 딸이 듣는 말은, “응, 한 두어서너 뿌리.” 이다. 딸은 더욱 난감해진다. 어머니는 왜 똑 부러지게 말해주지 않는가?

산을 내려가다 보면 숨을 몰아쉬며 올라오는 이들과 만난다. 정상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는 그들에게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답한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내려와서 만나는 사람에게도 역시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말한다. 이때 이 사람의 말은 “반도 더 남았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정확하지 못한가?

길이나 질량, 또는 시간 등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과학의 기초이며 소위 과학적인 태도란 사물을 정확히 하고 애매성을 배제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논리에서는 예, 아니오 두 가지 개념만을 허용한다,  사고나 추리 따위를 끌고 나가거나 혹은 사물끼리의 연관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그와 같은 단순한 경로를 통해야만 지나친 비약을 피하면서 명쾌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컴퓨터의 정보 역시 0과 1 두 가지만을 허용하므로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은 무시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을 어디 예, 아니오 라고만 표현할 수 있는가?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마주치는 일들은 그렇게 칼로 무 베듯 분명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대체로 아이들은 이런 애매하고 불분명한 상황을 견디지 못해하는데 그것은 알고 보면 상황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은 사람 같으면야 음식의 종류나 양을 가늠하여 알아서 파 두 뿌리든, 세 뿌리든 뽑아올 일이고, 남으면 남는 대로,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별 상관을 안 할 터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한 ‘한’이란 말은 ‘하나’의 의미보다는 ‘대략'이란 뜻으로 한 말이지만, 굵기가 굵으면 한 뿌리만으로도 될 일이요, 가늘면 여러 뿌리가 필요할 일이다. 그나마 남으면 두었다 쓰면 되니 모자란 것보단 낫다 싶어 넉넉히 뽑아오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한 두어 뿌리‘는 그냥 한 뿌리 아니면 두 뿌리라고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상황을 고려한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등산 이야기도 그렇다. 사실 산을 찾는 이들은 산에 오르는 일이 힘이 들 것을 예상하고 오는 사람들이다. 설사 반도 더 남았다는 말을 듣는다 해도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가지는 않을 터이지만 정작 오르다보면 숨도 차고 다리도 아파서 누군가에게서 위로를 받고 싶어 묻는 것이다.  ‘조금만 더’란 물리적인 거리나 시간을 뜻하기 보다는 측정할 수 없는 정신적인 의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힘이 드느냐. 하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라’는 격려의 말로 진실 혹은 정확성이 없다고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얼마 전, 신기하게도 옷감의 양이나 질 등을 센서로 감지하여 물살과 세탁시간을 알아서 조정해주는 세탁기 이야기를 들었다. 퍼지 이론이라고, 애매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인간의 두뇌활동과정을 응용한 고도의 과학의 산물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정확성을 요구하는 과학에도 상황을 고려하는 융통성과 배려의 장치를 더하면 한 발 앞선 첨단과학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타인의 상황이나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능력, 그리고 융통성이나 유연한 사고력은 세상을 한 걸음씩 아름다워지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며 우리 아이들이 체득해야할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