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를 이용하는 법은 없다
민초를 이용하는 법은 없다
  • 고주환
  • 승인 2019.07.0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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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통장의 자각과 행정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며
[기고] 고주환 (사)공주시마을공동체네트워크 이사장
고주환 ⓒ백제뉴스
고주환 ⓒ백제뉴스

 

시끄럽다. 보통 떠들썩한 게 아니다.

이·통장 폐지(청원번호 126659) 청원이 청와대 홈피에 올라 있고, 한편으로는 이·통장 처우개선에 당정과 여야가 한목소리다(뉴시스, 2019.06.23.).

이·통장 폐지를 주장하는 자들의 주요 골자는 이장의 이권 개입이라고 하며 이·통장 처우개선의 주요 골자는 “행정안전부 훈령인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에 따라 지자체별로 마련한 조례”에 근거하여 지급하던 수당이 15년 간 동결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적 규정을 마련하여 대우도 해주고 그에 맞게 책임감을 지우자는 것이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이권 개입을 조장한 것도 행정이며 그 수당을 15년간 동결한 것도 역시 행정이다. 풀 위로 바람이 불면 쓰러진다.(草上之風必偃) 백성을 풀에 비유한 말이다. 정치지도자의 잘못이며 행정관리의 잘못이다. 인류역사상 민초가 잘못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 5천년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헌법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국민은 행정의 목적이지 행정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통장의 역할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변화는 있었다. 새마을운동 당시의 새마을 지도자, 균형발전특별회계의 마을사업에 따른 사무장, 주민자치회 등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의 사안에 따라 이·통장과 새로운 정부사업으로 등장한 이들과 대립·갈등을 조장해 왔다. 그 또한 행정이 자행한 것이다. 그리고 뻔뻔하게 주민의 화합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소관업무의 책임 문제로 매일 다툰다.

이·통장의 능력과 책임, 그 유무에 관계없이 이·통장의 주민직선은 그 역사가 깊다. 따라서 직선의 이·통장은 주민의 신뢰와 마을에 대한 이해와 애착이 문서나 만지고 컴퓨터 조금 한다고 해서 그들의 위치가 흔들릴 만큼 나약하거나 가치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은 그들의 대표성과 능력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행정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행정을 전달하고 통제하는 최 일선의 도구로 이용만 해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내세우고 주민자치란다. 행안부에서 표준안을 만들고 자치단체별로 조례안을 만들어서 주민자치회장을 이·통장 위에 올려놓고 법적 근거에 의해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라고 한다. 동·면장도 주민자치회장의 주관 하에 발언한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운영하라고 하는 자 또한 행정관리이다.

누가 수긍할까? 아무도 수긍하지 않는다. 다만 웃기는 일이지만 같은 지역이라는 안면관계로 뒤에서 푸념할 뿐이다.

정치와 행정이 진짜 제대로 된 풀뿌리민주주의의 정착을 원한다면 그렇게 쓸데없는 짓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이·통장은 누구인가? 주민직선의 대표자이다. 면 단위 협의회장은 누구인가? 면 단위의 이장이 모여서 선출한 대표자이다. 시·도·전국의 대표자는 누구인가? 똑같은 방식으로 선출한 대표자이다. 대표성 측면에서 그만 못한 농협을 예로 들면 마을 주민 전체도 아닌 조합원의 선출이며 중앙회 회장 또한 같은 방식으로 선출한 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떠한가? 어찌하여 그들의 위상이 이·통장협의회장을 능가하는가?

실제로 공주시 이장단협의회장은 그 지지기반과 선출과정을 놓고 보면 공주시의장과 공주시장에 견주어 손색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항상 행정이 짜놓은 훈령에 의해서 하나의 심부름꾼으로 여기는 처사는 학교에서 학급의 임원을 선출하고, 직선으로 학생회장을 선출하지만, 실질적으로 학교 운영에 아무런 권한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다. 결국 행정의 입장에서 보면 이장은 학교의 반장과 다름이 없다.

그러니 오늘의 대한민국 행정은 헌법의 규정을 무시하고 민을 지배하는 권력자로 둔갑해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갑질을 하면서도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모른다. 한심하다. 이른바 운동권, 민주주의 투사라 하는 그들이 권력을 잡고도 여전하다. 나아가 현재 이·통장 폐지 운운하면서 일부 드러난 현상만 보고 그들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는 것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처사이거니와 이를 두둔하는 것처럼 하면서 처우개선 운운하는 것 또한 돈 몇 푼으로 그들의 처지를 동정하는 것 또한 참으로 비민주적인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똑바로 하자.

그러기 위해서 우선 물어보자. 대한민국 70년 행정사에 행정이 잘한 일이 있으면 한번 말해보라. 오죽하면 공무원이 손만 대면 모든 것이 망쳐진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하겠나? 이 말에 모든 공무원이 자책할 필요는 없다. 지방공무원(시도)은 그 직급여하를 막론하고 자율권이 없다. 이는 일제 치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점 오해 없길 바란다.

읍면동장이 직선의 이·통장을 모여 놓고 회의를 주재하는 것이 풀뿌리민주주의에 맞는가? 아니면 이·통장의 주재 하에 면장이 행정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정치지도자와 행안부가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라는 미명하에 주민자치회(이 또한 관치로 행정의 통제 하에 있다.)를 지방자치의 만병통치약인양 행정력을 동원하여 앞세우고 따르라고 하는 것이 옳은가? 아마 그들은 단 한 번도 이·통장에게 헌법을 가르친 적이 없을 것이다. 과거 일제치하나 독재시절처럼 그들은 항상 민초를 가르치고 통제하는 권력자였으니, 그것이 갑질인줄 조차 모를 것이다.

그런 갑질의 대명사가 바로 중국의 진시황이었다. “관리를 스승으로 삼는다(以吏爲師)”는 것이다.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행정 또한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을사오적이 나라를 파니 공무원은 그들의 지시를 따랐고 지난 70년간도 지도자가 누구든 그 명령을 따랐다. 공권력이라는 명칭 아래 행해진 일이다. 그 결과 나타난 부작용을 이·통장의 잘못이라 비난하는 자도 있으며 그들의 처우를 개선하여 좀 더 현실에 부합하게 이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들이 진정 촛불혁명의 가치를 인식하고 개혁을 원한다면 당연히 민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행정은 반성적 사고가 없다. 결단코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권력의 속성이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고 민란이 일어나도 그들은 잘못이 없다. 그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니 교육부의 고위관리가 “국민은 개돼지”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4·19, 5·18, 촛불혁명 등 국민적 정의 표출에도, 선출직의 고위정치지도자가 처벌을 받고 교도소에 가도, 행정은 여전히 국민 위에 군림하며 어린학생 다루듯이 통제하는 것이다.

행정이 변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 이·통장을 폐지하든, 이·통장의 처우를 개선하든, 아니 주민자치위원회를 모두 주민자치회로 전환한다 해도, 행정의 도구로 존재하는 한 이 나라는 여전히 희망이 없다.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선 행정이 행정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국민에 대한 공무원의 역할(헌법7조)을 자각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와 병행하여 읍면동 단위의 지도자를 위시한 이·통장의 자각과 마을주민들의 자각이 있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소극적인 국민주권의 외침이 아니라 지난 70년간 일방통행식 행정으로 부각된 양극화와 저출산, 공동체 붕괴를 비롯한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주민직선의 대표성을 지닌 이·통장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감을 자각하고 적극적으로 행정의 개혁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풀뿌리민주주의의 구현이며 공동체의 복원이며 모든 국민이 행복을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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