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무엇 하는 곳인가
학교는 무엇 하는 곳인가
  • 지희순/정산중학교 교장
  • 승인 2007.05.2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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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은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젊고 유능한 대학생들과 정든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간 한 이민가정의 꿈과 희망을 한 순간의 물거품으로 만든 사건이었다. 동시에 청소년의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학교교육은 지식교육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라도 바람직한 품성과 공동체적 가치관을 길러주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일견 이러한 주장은 교육적 혜안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식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러한 주장은 학교의 존재 이유를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며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을 서로 대립적인 관계로 보는 잘 못된 생각이다. 또한 그 속에는 자칫 지식교육에 대한 일정 부분의 실패를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빌어 합리화 내지는 정당화할 수 있게 만드는 중대한 오류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는 그 본령이 지식교육이다. 그동안 학교의 문제는 지식교육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식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지식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 또는 지식교육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대개 지식교육을 주입식, 혹은 단편지식의 암기라는 부정적인 등식으로 단순화하고 폄하한다. 그것은 과거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가르쳐 온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제한적인 바운더리 속에서 내리는 결론이다.  그러나 지식교육은 사물과 현상 등에 대한 지식, 이해, 분석, 적용, 종합, 평가 등의 인지적인 단계를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 극히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암기나 암송 같은 것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시나 문장을 반복하여 암송하던 것을 기억해보라. 그 문장과 그 시구가 우리의 피 속에, 우리의 정서 속에, 우리의 DNA 속에 녹아 유전되고 이 내재율이 위대한 창작물의 바탕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식과 정보의 양이 가공할 만큼 늘어가고 있는 지식기반사회, 또는 평생학습사회에서 지식이란 학습내용 자체만이 아니라 학습생성력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학교는 한 번 배워 끝이 나는 하나의 완성교육의 장이 아니라, 장래에 대한 비전과 동인動因, 학습하는 방법, 도구가 되는 정보능력이나 언어능력 등 평생학습력을 길러주는 곳이어야 하며 이러한 기초기본 교육을 통하여 창의력이 길러질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지식교육은 인성교육과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다. 지식과 바른 인성을 갖춘 건강한 사람이야말로 우리 교육이 추구해야할 목표이며,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은 학교교육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른 인성은 덕목에 대한 이론교육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에 의하여 서두른다고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도 없다.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은 말로써, 교과로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지식교육을 하는 가운데 학교의 풍토나 교사의 태도를 통하여 동시에 수행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바른 가풍 속에서 올바른 인성을 갖춘 자녀로 성장하듯이,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그렇게 알게 모르게 체득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성교육은 교사가 지식을 가르치는 가운데 보이는 모습 그 자체이다. 즉, 교사가 학생들을 사랑하고 열심히 교재준비하고 연구하는 모습, 열과 성을 다하여 가르치는 모습, 동료 교사들과 선의의 경쟁도 하고 협동도 하며 화기애애하게 생활하는 모습, 학생들과 어울리며 함께 청소하고 봉사하는 모습, 상과 벌을 적용하는 방식, 자신의 건강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 가족을 사랑하고 일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 등을 학생이 닮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러므로 학생이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과 수업에 임하는 태도나, 학습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경쟁과 협동의 경험을 통하여 스스로를 다스리고 발전시키려는 의지와 끈기를 내면화 하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학생이 평생 사숙私淑할 대상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것이 학교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