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죽음에도 등급 매기는 대한민국
억울한 죽음에도 등급 매기는 대한민국
  • 유재근 기자
  • 승인 2015.05.25 17: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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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유재근
유 재 근

사람의 목숨에는 존귀가 있을 수 없고, 죽음에 대한 슬픔에는 경중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세상은 억울한 죽음에도 등급을 매기려 한다. 그런 냉정함이 남아있는 유가족들을 또 다시 아프게 하고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벌써 1년이 지나고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에는 꽃다운 나이에 끔찍한 사고를 당한 학생들과 그 주변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위로, 그리고 분노가 함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인 사슬에 얽매여 여론이 분열되고 사회적 담론이 오염되고 있다. 그들이 억울한 이유로 죽었고, 심지어 또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여전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최근 경기도교육청과 인사혁신처 등의 발표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교원 10명 중 3명이 순직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기간제 교사 2명과 사고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강 전 교감이 그들이다.

똑같은 죽음에, 그것도 학생들을 먼저 구조하기 위해 물 속에서 싸우다 세상을 떠난 2명의 담임교사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순직 심사에조차 오르지 못했다는 게 과연 우리나라의 자화상인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전교조에서조차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뾰족한 답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에 대해 인정하는 분위기다.

법이 그런 걸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들이 그것을 바라고 세월호 안에서 사투를 벌이지도 않았을테고 가장 원론적으로 의사자든 순직이든 아니면 더 훌륭한 무엇을 준다고 해서 그들의 목숨이 살아서 돌아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다른 동료 교사들이 의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기억될 때 기간제인 그들은 그냥 죽은, 어쩌다 침몰하는 배에 타는 바람에 운 없이 죽은 걸로 끝나고 마는 일이다. 그 유가족들의 입장은 먼지만큼이라도 생각은 해 보았는가.

강 전 교감의 경우도 비슷한 일이다. 공주대 사범대 출신으로 사건당시 총 책임자이기도 했던 그가 구조되어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하지만 며칠 후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세상이 온통 그를 못된 교감으로 마녀사냥을 해댔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와서는 실종자 가족들이 해코지 할까봐 도망갔다는 망발이 나돌다가 주검으로 발견되고 나서야 혀끝에 명복이란 두 글자를 뱉은 게 일반 국민들이었다. 여론살인을 저질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강 전 교감의 부인은 “학생 20명을 구하다가 지병인 저혈당 때문인지 순간 정신을 잃고 쓰러져 구조됐다며 끝까지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애썼던 남편”이라고 변호하고 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망인은 세월호 사고 '생존자'로 생존자 증후군이 자살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려고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너무 드라이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같은 교사라도 정식적인 위치에 있는 교사만이 인정을 받을 수 있고, 바다 안에서 죽어야만이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은 ‘법대로’라는 얄궂은 명분하에 이들의 죽음에 대해 국가가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결과물이다.

정작 그때 세상을 떠난 그들에게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또 어떻게든 제자들을 살려보려고 노력했던 그들에게는 어떠한 정치적 견해도 없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