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뜨락에 사는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경천뜨락에 사는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 조영숙
  • 승인 2015.02.0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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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창>조영숙
조 영 숙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낯섦, 고요함, 외로움, 두려움의 감정들이 실타래처럼 엉키어 마음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엄마품속처럼 작고 아늑한 공주에 살면서 나와 상관없을 듯 무심히 지나쳤던 곳에 둥지를 틀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3학급의 제법 큰 규모에서 60명이 넘는 아이들과 생활하다 경천뜨락에서 맞이한 아이들은 고작 7명에 불과하였다.

소인국으로 여행 온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가정방문을 할 때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하루에 두 군데 들르기도 벅찼던 곳, 학부모들과의 만남은 딸기가 자라고 있는 하얀 비닐하우스속에서 대부분 이루어졌다.

새 봄이 시작된 날, 며칠 전까지도 함께 했던 익숙한 담임교사가 떠나고 처음 본 낯선 선생님과의 만남에 선뜻 달려오지 못했던 아이들.

스쿨버스에서 내릴 때 손을 잡아주려 하면 비시시 웃고는 눈도 잘 안 마주치던 아이, 수업 중 질문을 해도 입을 굳게 다물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끝날 때까지 말을 않던 아이, 이틀이 멀다하고 바지에 실례를 하고 안 한 듯 앉아 있다 걸을 때마다 바지 속에서 조그맣고 까만 콩들을 뚝뚝 떨어뜨렸던 아이.

친구들끼리 장난치다 넘어져 생긴 이마의 혹이 걱정되어 중요한 출장을 취소하고 병원에서 엑스레이 결과 나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던 시간들.

유치원에서 잘 놀다 집에 도착했을 무렵 갑자기 편도가 부어올라 열이 40도까지 올랐다며 하소연하는 어머니의 울부짖음에 병원으로 달려가 8시 30분이 넘도록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다 배가 고파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던 일들.

인라인 스케이트장에 신나게 뛰어놀 수 있도록 자전거를 마련해주신 원장선생님의 배려로 하루도 안 거르고 자전거를 타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햇빛에 노출된 팔과 다리, 목은 아직까지도 검은색의 반점들이 흉터로 남아 있다.

학습발표회 때 스피커 오작동으로 댄스곡이 중간 중간 나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앞에서 눈짓 발짓하는 교사의 신호에 따라 동작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멋지게 댄스를 마친 아이들.

7명의 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었지만 어쩜 이리도 많은 이야기들을 엮어낼 수 있었을까?

10명 이하(7명) 소인수로 인해 기간제교사 없이 혼자서 6개월 동안 하루 8시간 아이들과 가깝게 생활하면서 얻은 별명은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이다.

경천뜨락에서 살고 있는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라고 소개할 때면 친한 지인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일곱난장이는 이해가 되는데 백설공주라니요?” 백설 공주치고는 너무 나이가 많고 결혼도 했기 때문에 도통 그 별명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오면 우리 교실은 푸르른 나무와 먹음직스러운 열매와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숲속이 되고 나는 젊고 지혜로운 백설공주가 되어 일곱명의 사랑스러운 친구들과 즐겁고 신나는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제는 어쩌다 늦게 올 경우 아이들은 교실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드르륵 문이 열리면 약속이나 한 듯 소리를 질러대며 문 앞으로 달려온다, 머리모양이 바뀌었어요, 안경이 달라졌어요. 브로치가 아름다워요 등등 모든 변화에 반응하고 자기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아이들.

소방관, 아빠, 발레리나, 군인, 간호사, 요리사, 엘사가 되고 싶은 아이들.

꿈이 많은 아이들과 살기에 오늘도 나는 백설공주도 되고 인어공주도 되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로도 살아간다.

26년 9개월! 27개의 교실에서 만났던 아이들로 인해 수많은 동화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지난 시간들.

이름과 얼굴 모두 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렇게 가슴으로 말하고 싶다.

“너희들이 있었기에 선생님은 무척 행복했단다. 사랑한다. 나의 제자들!”

/경천초병설유치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