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배 선생의 8·15 생생한 증언
황용배 선생의 8·15 생생한 증언
  • 이원구 기자
  • 승인 2013.08.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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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특집>
2대 영명학교 교장과 초대 충남도지사를 지낸 故황인식 선생의 친손자인 황용배씨가 13일 공주영명학교를 방문, 어렸을 적 생생한 증언을 하고 있다.

황용배 씨(74).

그는 초대 충남도지사이자, 2대 영명학교 교장을 지낸 故황인식 선생의 친손자다. 아버지는 4살 때 돌아가셨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국마사회장직을 수행했던 황용배 씨가 13일 모교인 공주영명고등학교를 찾아 일제강점기 하에서 항일민족운동의 본거지였다는 생생한 증언을 했다.

“제 본가는 왕촌이에요. 할아버지, 증조부, 고조부도 이곳이고 어렸을 적 성묘를 다닌 기억이 납니다. 외가도 이인면입니다. 오리지널 공주사람이에요. 영명학교를 나온 뒤 서울로 유학갔고 서울서 생활했지요.”

독실한 크리스찬인 황 씨는 할아버지 황인식 선생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만큼 자신의 인생에 큰 역할을 담당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예수를 믿게된 동기는 윌리엄선교사(영명학교 설립자)가 신학문을 가리켜준다고 해서 글을 배운다는 일념에서 시작했어요. 당시엔 예수 믿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지요. 공주 1호 교인이 할아버지였지요. 당시엔 예수믿는다고 집안에 난리가 났습니다.”

황용배 씨는 갑자기 일제강점기 시절 얘기를 꺼냈다.

“천안 병천은 공주와 굉장히 가까웠어요. 유관순(영명학교 보통과 재학), 유우석(보통과 10회·유관순 친오빠)이 여기서 공부를 했어요. 사실 근처에 교육기관이 없었습니다. 충남도에서 다왔다고 보면 됩니다.”

“유관순 아버지, 어머니 순교…할아버지가 교소도 투옥된 유관순 동생 데리고 나와 키워”

“유우석이 학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려했는데 군대가 주둔해서 못했죠. 그래서 4월1일 공주시장에서 만세운동을 했어요. 유우석이 투옥되고 유관순, 유관순 아버지, 어머니가 순교했지요. 이 때 할아버지께서 교도소에 투옥된 유관순 동생을 데리고와서 키웠지요.”

 

공주영명고 이사장실에서 황 선생으로 부터 증언을 듣고 있다.

황용배 씨는 유관순 열사에 대한 얘기는 친오빠인 유우석를 통해 직접 들었다.

당시 영명학교에 다니다가 이화학당에 뽑혀 서울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단다. 그러던중 영명학교가 일제에 의해 폐교되는 수난을 당한다.

해방이되어도 바로 복교가 안되어 7년정도 공백기가 있어 학교 발전에 큰 저해요인이 되었다는게 황 선생의 주장이었다.

“폐교가 되면서 국방경비대가 학교에 들어왔어요. 그 유명한 백선엽, 송효찬 장군이 거쳐갔지요. 이 터가 민족혼 뿐만아니라 국방혼도 큰 몫을 담당했어요.”

“3.1운동때는 인도하는 팀, 수습하는 팀이 있었죠. 우리 할아버지는 뒷수습하느라 얘쓰셨지요. 신의주, 광주사건 당시 일본경찰이 훼손한 것이 바로 영명학교였어요, 3.1운동의 진원지였기 때문이에요.”

황용배씨는 뜻 밖의 얘기도 꺼냈다.

“공주에 왕릉이 더 있다는 소릴 들었다. 유력한 곳은 산성공원으로 꼽더라”

“일제강점기에 공주왕릉을 발굴했는데, 공주에 왕릉이 더 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걔내(일본)들은 발굴하는 장비가 있었죠. 유력한 곳으로 산성공원을 꼽더라고요. 그리고 봉화대에 있는 돌들을 일본에서 캐간 사실이 있습니다. 특이한 돌들이 많았지요. 공주는 광복에 중요한 역사를 갖고 있기도 그 외의 것들도 많습니다.”

함께 참석한 최범수 전 공주시청 국장은 봉화대에 있는 돌들이 불이 붙는다는 소리를 황 선생에게 전해들었다며 생생한 증언을 부탁하기도 했다.

황 씨는 공주가 양반들이 많아 문제였다는 증언도 내놨다. 철도를 못지나게 한 것이 그것이다.

“철도가 청주~공주~논산으로 지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양반들이 극렬히 반대했어요. 젊은이들은 철도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죠.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날 황용배 씨는 영명학교 설립자인 윌리엄과, 공주에 정착한지 6개월만에 장티푸스로 영면한 ‘사 선교사’ 등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옛 추억을 되살렸다. ‘사 선교사’묘지는 현재 영명학교 학내에 위치해 있다.

‘사 선교사’가 1905년에 지은 집은 공주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이기도 하다.

방치된 선교사‧자녀들 묘비 정비 움직임…‘스토리텔링 코스’ 제격 목소리 나와

현재 공주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방치되다시피한 당시 활동했던 선교사들과 자녀들의 ‘묘비’를 새롭게 정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담소를 나누고 있는 황용배 선생.

최범수 전 공주시청 국장은 “‘사 선교사’나 ‘윌리엄 선교사’는 자국에서 선교비를 갖고와 공주에 영명학교와 제일감리교회, 영아원(현 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 위치)을 지었다. 영아원은 당시 전염병이 창궐한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일을 감당했다”고 전했다.

계속해서 “유관순 열사 등 3.1독립운동을 뒤에서 열심히 도왔다. 선교사는 자기 아들 이름을 ‘오광복’으로 지으며 대한민국의 독립을 염원했다”면서 “이들 선교사와 자식들의 무덤이 공주에 있는데 방치되고 있어 현재 십시일반으로 모금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최 전 국장은 “현재 여러명의 성금으로 220만원이 모금되었고, 조경사업자 이모씨가 정비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면서 “스토리텔링 코스로 개발하면 공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