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꽃차를 마시는 이유
산삼꽃차를 마시는 이유
  • 이달우 공주대 교수
  • 승인 2008.03.1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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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 동료교수 덕분에 산삼꽃차를 마실 수 있었다. 장뇌심이기는 하지만 산삼꽃은 얼핏 보기에 여느 인삼꽃과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산삼인지라 마실 때마다 기분 또한 괜찮았다. 귀한 산삼을 물처럼 실컷 마실 수 있었으니 다시금 고마운 인사를 드리고 싶다.
 
사람들이 즐기는 마실거리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커피와 녹차다. 하지만 나는 입맛에 썩 당기지 않아 잘 마시지 않는 편이다. 대신 보리차나 생수를 마시고 싶지만, 손님의 의향도 묻지 않고 내놓는 커피나 녹차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처음 마셔본 산삼꽃차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기운다. 맛 또한 나쁘지 않았다. 그 뒤로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산삼꽃차를 선호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있다. 제법 그럴 듯한 논리로 산삼꽃차를 예찬한다.
 
산삼은 본래 뿌리를 귀히 여기게 마련이다. 수십 년 이상 묵은 산삼이라면 그만한 세월 동안 뿌리에 산삼의 정수가 농축되었을 것이므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몇 년 되지 않은 것이라면, 뿌리보다는 꽃에 더 산삼의 진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꽃은 식물이 전력을 기울여 자신의 생명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 두 해 정도 묵은 산삼이 생긴다면, 뿌리보다 꽃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는 생각이다. 이만하면 산삼꽃차를 마실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지 않겠는가!
 
엊그제 다시 산삼꽃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일본 북해도대학교의 스즈키 토시마사(鈴木敏正) 교수와 그 부인이 우리 학과에서 추진하고 있는 스타 프로젝트(Star Project)의 해외석학 초청사업의 일환으로 지금 우리 학교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르고 있다. 접대차 두 분을 모시고 공주에서는 제법 근사한 찻집에 갔다. 어떤 차를 주문할 것인가 함께 상의하였는데, 나는 당연히 앞의 예찬론을 펼치며 산삼꽃차를 권하였다.
 
그러면서 과연 산삼꽃차 예찬론이라 이름지을 만한 새로운 논리를 더 생각해 냈다. 대화와 토론은 이래서 매력적이다. 우리의 안목을 새롭게 틔워주기도 하고, 지혜의 밝은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기도 한다. 각설하고 산삼꽃차를 마셔야 하는 이유를 들어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산삼꽃차를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음식의 맛을 탐닉하는 미식가가 아니므로 산삼꽃차의 맛을 구구절절이 형용해내지는 못한다. 다만 산삼꽃차는 우리의 미각에 아첨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첫맛은 쌉싸롬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은은한 감미가 입안을 채운다. 뒷맛이 좋다. 차향 또한 그렇다. 이 점이 우리가 종사하는 교육의 세계와 닮았다. 교육은 오늘보다는 내일을 생각해야 한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장래의 더 큰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달콤한 개인의 영달보다는 함께 하는 세상의 즐거움을 지향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염량세태 세상을 살아가면서 편협한 사리사욕과 번민의 강에 익사하지 않고 진리의 피안에 오르자면, 산삼꽃차의 미각으로 느낄 수 있는 삶의 응당한 이치를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내가 산삼꽃차를 마시는 것이 이래서 좋다는 보다 세련된(?) 이유를 늘어놓자, 스즈키 교수의 부인이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메모장을 꺼내 적는다.
 
나는 스즈키 교수의 부인이 놀리는 볼펜의 움직임을 보면서 세계적인 학자의 부인을 감동시킨 나의 설득력이 자랑스러웠다. 게다가 내일의 강의에 필요한 이야기거리를 장만하였으니 이 아니 흐뭇하겠는가! 나는 늘 학생들에게 ‘앉으나 서나 교육생각’을 하라고 권면한다. 그러면 교육을 보는 안목이 열리게 되고, 까짓 임용시험 정도는 걱정할 것도 없게 된다고 장담하곤 한다.
 
 이제 하찮은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내가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앉으나 서나 교육생각’의 실제적인 사례를 몸소 보여주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내일 만날 학생들은 이미 나에게 설득된 셈이다. 이래저래 기분이 최고이다. 벌써 내 마음은 의기양양하게 강의실 문 앞에 서 있다. 이것 또한 내가 산삼꽃차를 마시는 의미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니고 무엇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