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이후 최고의 고분군 발굴
무령왕릉이후 최고의 고분군 발굴
  • 김종술 기자
  • 승인 2011.11.0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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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역사문화원구원..."백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
이훈 충남역사문화연군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이 출토된 유물을 설명을 하고 있다.
'공주 수촌리 고분군 발굴조사'를 벌인 이훈 (재)충청남도역사문화원구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은 2일 오후 2시부터 충남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발굴현장에서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발굴조사 결과 확인된 청동기시대 수혈유구 5기, 원삼국시대 수혈유구 9기, 백제시대 석곽묘 2기, 석실분(추정) 1기, 토광묘 1기, 기타 시대미상 석곽묘 1기, 수혈유구 4기 등 총 23기의 유구가 공개됐다.
 
현장에서 청동기시대 문무토기편, 백제시대 대호·광구호·광구장경호·단경호·단경소호·고배 등의 토기류, 환두대도·도자(옻칠) 등의 무기류, 재갈·등자 등의 마구류, 관정, 꺽쇠, 교구 등의 철기류와 금동신발, 곡옥, 토제방추자, 석촉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수혈유구는 출토유물인 이중구연 단사선문토기(二重口緣 短斜線文土器 : 겹입술빗금무늬토기)를 통해 공주 수촌리 일대에 선사 시대부터의 생활양상을 파악하는 자료로서 의의가 있으며, 원삼국시대로 추정되는 수혈유구는 총 9기로 공주 장선리유적에서 확인된 토실(土室 : 토담집)과 일부 유사한 형태가 확인됐다.
 
이훈 연구실장은 "백제 시대 고분군에서는 기존 조사된 수촌리 고분들과 유사한 유물의 출토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7호분에서는 대호(大壺 : 큰 항아리), 광구호(廣口壺 : 넓은 입 항아리), 단경소호(短頸小壺 : 짧은 목단지), 고배(高杯 : 굽다리접시) 등을 비롯한 토기류와 환두대도(環頭大刀 : 고리손잡이 큰칼), 도자(刀子 : 손칼), 재갈(말의 입에 물리는 막대), 교구(鉸鉤 : 띠고리, 추정) 등의 철기류가 확인됐고, 8호분 내부에서는 금동식리(金銅飾履 : 금동장식신)를 비롯한 옻칠도자(刀子)를 포함한 각종 토기류 등의 유물이 확인되어 기존 조사된 수촌리 고분군과의 성격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수촌리 고분군은 의당농공단지 조성 예정부지에 대한 지표조사 후 존재가 확인되었는데, 2003~2004년 발굴조사를 통해 발견된 6개의 고분군에서 '중국제자기와 환두대두, 금동관, 금동신발 등이 대거 쏟아졌다. 더욱이 유물들을 보전처리하는 과정에서 최초로 사람의 발 뼈가 확인되어 그 주인공을 놓고 한동안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ㅁ환두대도, 큰0안 금동신발, 작은0안 등자로 추정되는 유물이 대거 발견되었다.
금동신발은 동판으로 신발을 만들고 겉에는 금을 입힌 것으로, 삼국시대에 주로 사용됐다. 주로 왕족이나 왕족에 버금가는 사람들의 무덤에서 나오고 있다. 가족묘로 보이는 수촌리 고분의 경우 4세기 말에서 5세기 중반으로 확인됐으며, 무덤의 주인이 백제 왕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기도 하였다.
 
발굴 당시 백제 무령왕릉은 5세기 백제 전반에서 사용됐던 '굴식돌방무덤'의 발달된 무덤 양식으로, 반드시 출입구가 있고 부부 합장이 원칙이다. 당시 이남석 교수(현 공주대박물관 관장)은 "이 사람들이 입구를 만드는 무덤 형태만 배우고 와서 장법은 이전의 한 사람만 넣은 것을 고수한 것으로 보인다. 시기변화에서 매장관념에 변화가 나타나는데 수촌리에만 전통적인 방법과 서울에서는 지배층이 적성총을 사용하고 지역은 독자적인 무덤을 사용하고 있었다"라고 당시 KBS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또한 당시 수촌리에서는 '살포'(논의 물꼬를 트는 데 사용되는 농기구다)가 출토되어 왕이 그 지역의 농사권을 준다는 의미였다. 백제시대 하사품이었던 '살포'와 더불어 '궤장'(지팡이 끝에 살포가 달려 있다)은 오랜 공직을 마친 고급 관리에게 임금이 주는 최고의 영예였다. 수촌리의 경우는 '환두대도'(지역에 군사권을 부여 받은 경우)가 발견되어 경제권만 아니라 군사권까지 부여받은 최고 권력자였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 지난 1일 찾은 현장에서 발굴 조사가 이루어 지고 있었다.
 
 

공주 수촌리 고분군은 사적 제 460호로 지정되어 공주지역 백제고분의 변천과정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까지 10기의 고분군이 발견되어 출토된 유물이 백제의 웅진천도 이전에 조영된 것으로 짐작되어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한성 백제시대의 중앙과 지방의 상호관련성을 보여주는 백제사의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