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늦더위를 천내강에 실어보내리
8월 늦더위를 천내강에 실어보내리
  • 대전충남녹색연합 박은영 시민참여국장
  • 승인 2011.08.2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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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녹색연합과 함께하는 금강트래킹

이제 여름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기운이 도는 요즘이었다. 토요일까지 내내 내리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듯 그치고 반짝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금강트래킹은 날씨 하나는 복 받았다. 너무 뜨겁지 않은 햇빛과 시원한 바람이 오늘의 금강이 준 선물이었다.

아픈 천내강의 일부를 보다

작년과 또 제작년과는 더더욱 다른 풍경이다. 작년에는 분명히 큰 미루나무가 줄 지어 서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제는 없다. 4대강정비사업 한다고 꽃밭 만드느라 다 베어버렸단다. 갑입곡류하천답게 영글은 열매처럼 형성되어 있던 작은 하중도들이 하나도 없고, 강변도 매끈하게 다듬어져 제방공사 중이다. 심었다던 꽃밭은 작년에도 물에 휩쓸려 다 버렸었는데 올해도 다르지 않다. 강마다 서 있는 포크레인이 지겹고 지루하다. 4대강사업 예산으로 제방도 높이고 꽃밭도 조성하지만 그 후의 관리비용은 고스란히 지자체의 몫. 재정사정이 좋을리 없는 지자체가 과연 그 관리비용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최수경 대표에게 천내습지와 저곡산성, 닥실나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대치리 금강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떼자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걷기는 딱 좋은 날씨였다. 가는 길목마다 아이들에게 보여줄 것들이 많다. 까치나비와 칡꽃, 늑대거미, 사위멜빵, 쑥부쟁이, 짝짓기를 하고 생을 마감한 여치의 몸, 수달이 먹고 간 물고기와 꼬리 등 뭐든 눈에 보이는 것마다 아이들의 놀잇감이고 호기심의 대상이다. 어른들도 호두나무와 이제 열매맺을 준비를 하는 산초를 보며 가을을 느꼈다.

금강이 머문 자리에 고운 모래와 자갈길을 만난다. 맨발로 걸어도 좋을만큼 부드러운 모래는 천내리 트래킹을 할 때면 꼭 만나게 된다. 갈대는 아직이지만 자갈길은 여전하다. 반갑다. 발을 어그적거리게 만드는 자갈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안녕하고 인사하는 소리같다. 반갑다, 아직 여기에 있어 너무 반가운 것들이다. 여전히 있지만 반갑지 않은 것이 있다면 가시박이다. 금강에 살고 있는 식물들을 모조리 덮어 말라죽게 하는 가시박은 퍼지는 속도가 엄청나서 아무리 잘라내도 막을 수가 없다. 회원들이 보이는 것은 다 끊어내 보지만 워낙에 많이 퍼져있어 안타까웠다.

트래킹의 막내 재민이가 조그만 손에 뭔가를 잔뜩 쥐었다. 뭐냐고 물었더니 올갱이 몇 알을 손에 쥐고 있다 보여준다. 집에 가서 키울거라고 폈던 손을 얼른 다시 쥔다. 뭔가 돌보고 싶은 마음이 참 이쁘다.

송호리 솔밭에서 만난 금강

영동 수두리에 비단강숲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다. 동네 어르신들이 해준 찬이 얼마나 맛있던지.(아! 먹느라 못 찍었습니다!) 찐호박잎, 고사리, 취나물, 떡볶이, 겉절이김치, 김, 된장국, 콩잎, 김치전. 찬이 몇 개던지. 어죽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지만 체험마을 백반은 단체로 올 때만 먹어볼 수 있는 터라 귀한 기회(?)였다. 아무래도 집밥같이 먹는 것이 가장 잘 먹은 것 같다. 찬마다 각자의 추억이 있기에 더 잘 먹은 것 같은게 아닐까.

배를 두드리며 영동 송호리로 가는 금강길을 걸었다. 길 초입부터 만난 것은 자전거도로였다.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 시골마을에 왠 자전거도로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자전거도로가 만들어진 옆으로 흐르는 금강은 올 여름에도 물이 크게 차 올라 자전거도로 보다 훨씬 높이 세워진 나무에 쓰레기가 걸려있을 정도였다. 여름에 자전거 타러 여기 왔다가는 자전거타고 천국길일지도 모르겠다. 흙에 덮여서 자전거 도로는 보이지도 않고 물이 고여있다. 도로 오른쪽에도 역시 울창하던 미루나무들이 다 베어졌고 생뚱맞은 철쭉들이 '엉덩이 빼고 앉아있다'. 무슨 말이냐면 강이 불어오른 바람에 심겨진 그대로 뿌리가 쏙 빠져있어 그냥 들고가서 심으면 될 정도로 모양이 고대로 드러나 있었다. 처음엔 심으려고 쌓아둔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더 올라가보니 심겨진 채 엉덩이가 살짝 들린 또 다른 철쭉밭을 만났다. 정말 '돈지랄'이 따로 없다. 이제 기후사정도 달라져 매년 물은 차오를텐데 매년 철쭉을 심을 것이며 자전거도로의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만해도 갑갑한 일이었다. 강 옆에 사는 나무들조차 물살을 이기지 못해 전부 옆으로 누워있었는데 강변에 소나무를 심어 고정시켜놓았다. 차라리 미루나무를 그냥 두지. 왜 모든 것을 그냥 두지 못해 이런 일을 벌이는걸까. 이 꼴을 본 채봉식 회원은 이걸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리시겠다며 나섰다. 그 곳에 있는 회원들 마음이 다 그랬을 것이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조금 더 걸으니 송호리 유원지로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휴가를 즐기고 있다. 송호리에서 솔밭산책을 하기로 하고 화려한 캠핑기구들 눈요기도 하고 물놀이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곳은 4대강사업도 비껴갈만큼 지역에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솔밭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지막 코스인 강선대에 섰다. 가는 길에 만난 어미소와 송아지가 반갑다. 강선대에서 보는 금강의 모습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햇빛이 부서져 반짝이는 금강의 모습이 소나무 사이로 아련하게 보인다. 그 모습 그대로 금강이 오래도록 아름답게 흘렀으면 한다.

출발하면서 최수경 대표께서 했던 말이 내내 머리에 맴돌았다. 우리가 늘 아름다운 금강길을 걷는 것은 아니라고, 어쩔 수 없이 훼손된 금강의 모습을 보게 된다고. 그러면서 금강을 잘 지키고 4대강사업이 강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생각하자는 말. 아픈 말이지만 현실이기도 했다. 4대강사업이 시작된 후로 강은 내내 아프다. 다듬어져야하고 강 곁에 늘 살던 식물들조차도 인간이 조정하려고 한다. 늘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을 들어내고 무언가를 세운다. 욕심이 턱없다. 어디까지 갈건지 생각도 하지 않은채 마구잡이로 달려든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답은 뻔하다.

'자연스러운 것'들을 더 이상 부자연스럽게 바꾸려들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개발이라는 이름보다는 그대로 두는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어른들부터 정말 소중한 것을 지켜낸다면, 우리 아이들이 풍요로운 삶,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