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권재덕의 ‘공주소리’
소리꾼 권재덕의 ‘공주소리’
  • 제미영 기자
  • 승인 2011.07.2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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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소리를 보급하고 전하고 싶다" 각오 밝혀

공주의 소리꾼 권재덕 씨가 지난 22일 공주문화원 대강당에서 ‘공주소리’로 신명나는 한마당 잔치를 펼쳤다.

이 날 공연은 공주문화원이 주최하고 예술하는 공주사람들 ‘예인촌’이 주관하는 쉰아홉번째 정기공연으로 권재덕 씨의 개인 발표회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공주 사람의 소리, 공주 사람의 흉중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유현한 소리, 예로부터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표현했던 공주의 옛 소리를 들려줬다.

▲ 공주문화원 강당에서 펼쳐진 권재덕 소리꾼의 '공주소리' 공연 장면

먼저 여는 소리(다듬이 소리)를 시작으로 논매는 소리(농사꾼의 애환을 그리던 전형적인 대표 노동요), 축원덕담, 상여소리(회닺이 소리), 그리고 풍장과 소리의 만남 순으로 이어졌으며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흥겨운 공연을 연출했다.

특히 상여소리(회닺이 소리)는 생을 마치고 세상을 하직하는 망인의 한을 달래주는 의미도 있지만 다비꾼(상여꾼)들의 노고를 위로하기도 한다.

권재덕 씨는 공연내용 중 가장 좋은 부분이 '상여소리'라고 한다.

어머니의 생애를 말로 표현하며 목메어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관객들도 목이 메어 숨죽이고 있었고 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

소리꾼 권재덕씨는 소리를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소리를 좋아했고 생활 속에 묻어나는 삶과 열정 속에서 구수한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다'란 신명나는 소리를 펼치는 소리꾼이다.

▲ 공주 소리꾼 권재덕씨

"아마 4살 때로 기억하는데 6.25사변 때 피난민들이 우리집 윗방에서 화롯불을 피워놓고 하룻밤을 쉬어가는데 그 당시 형도 남쪽지방으로 피난을 간 상태여서 형 이야기를 하면서 소리한자락을 할테니 들어보라고 하곤 4살짜리가 노들강변을 불렀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고 모두가 박수를 쳐줘 내가 정말 잘하는구나 생각했었다"며 "나를 소리의 신동으로 여겨주며 마을에서 연극 공연이 있을때 마다 간간히 소리를 시키기도 했고 1987년도 새마을청소년회 중앙경진대회에서 내 소리를 포함해 각색한 '공주 머슴 호미씻기' 공연으로 민속경연부문에서 장원을 했다"고 권재덕 씨는 지난날을 회상했다.

이어 "다시 노래를 시작한 것은 예인촌이 공연을 하면서다. 여기저기 부름을 받게 되면서 향토 소리꾼이라는 호칭도 얻었다"며 "이번 공연에는 400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아는데 외지에서도 오신 관객도 있었고, 공연이 끝나고 나서보니 50여명이 자리가 없어 서있었다. 내 소리를 들으려 2시간 동안 서서 있어준 관객들을 보며 감격했다. 내 능력을 스스로 평가해 보기도했다"고 공연을 마친 소감을 밝혔다.

권재덕 씨는 또한 "내 나이 66살이라 패기도 목소리도 줄어들어 가지만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공주에서 진실로 불러오던 논메는 소리, 축원 덕담, 상여소리, 흥겹게 부르던 풍장과 소리의 만남 등의 소리들을 보급하고 전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