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캄보디안
내가 만난 캄보디안
  • 원용철 목사
  • 승인 2011.05.1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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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이라고 불리는 국가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경제적 부의 편중일 것이다.

상위 5%가 부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가 20%를 쪼개다보니 대다수가 절대빈곤에 허덕인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이 권위주의나 부정부패가 심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지만 권력층의 부정부패는 더욱 심각하다. 권력을 쥐고 있는 일부 특권층에 의해 교육, 문화, 정보, 경제 등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당연히 부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일곱 차례 캄보디아에 의료봉사활동을 다니면서 공항에서 구호품들을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며 돈을 요구했던 프놈펜 공항의 세관원, 공립학교 선생님이 시험지를 학생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것, 교통경찰이 외국인 차량만 골라 세우고는 돈을 요구하는 행위, 대부분 민원서류에 급행료가 있는 것 등 부정부패의 실상을 듣고 보았다. 그래서 캄보디아에서는 ‘캄보디아니까’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의 모든 정보나 힘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어 권력을 쥐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이고, 고위직 공무원 외에 대부분의 하위직 공무원들은 급여가 적어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부수입이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뇌물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후진국의 모든 지식인들이 다 이런 모습이라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을 것이다. 도리어 우리가 그 사회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않고 단지 표면만 보고는 규정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내가 만난 캄보디아 사람들은 그런 부정부패의 고리에서 벗어나 그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통해 캄보디아의 희망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규정해 버린 후진국의 공무원들은 부패한 사람들이란 통념을 넘어 누구보다 그 지역사회를 걱정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캄보디아 전체 인구가 약 1300만이라고 한다.

그 중 단 몇 사람을 만나고 희망을 운운하는 것이 논리적 비약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캄보디아의 많은 사람을 만난 것도 아니고 많은 지역을 다닌 것도 아니고 단지 깜퐁츠낭이라고 하는 한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로 전체를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한 지역의 지식인들로 나름대로 한 지역의 희망이 되기에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그 첫 번째가 인 후원 목사님이시다. 그는 킬링필드 이전 세대로 올해 50대 후반의 깜퐁츠낭 진리교회를 담임목사님이시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처음에는 불교의 승려로 젊은 시절을 보냈고, 킬링필드 이후에는 외과의사로 일했으며, 현재는 신학을 공부하고 캄보디아 감리교 목사이다. 내가 지금까지 그를 만나면서 캄보디아에 이런 분이 계신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깜퐁츠낭의 예수라는 예명이 있을 정도로 고아들을 돌보고, 교도소를 찾아가 위로하고, 시골 지역에 다니면서 계몽활동을 하고, 교회나 학교를 설립하고, 망고농장을 통해 걸인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는 등 깜퐁츠낭에서 그늘지고 구석진 곳에 사랑을 전하는 사랑의 메신저이다.

그분이 신학을 하기 전에는 재산이 많았는데 목회를 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팔아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에 앞장서고 계신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깜퐁츠낭 주립병원 외과팀의 자문 역할도 감당하고 계시다고 한다. 지난 해 깜퐁츠낭 주지사를 만났을 때, 주지사도 인 후원 목사님에 대해서는 존경의 마음을 표시했었다.

그 다음은 깜퐁츠낭주의 보건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쁘락본 국장이다. 71년생으로 킬링필드 이후 세대인 나름대로 그 나라의 지식인이다. 그는 의사로 깜퐁츠낭주의 보건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지난 해 주지사를 만나는 자리에서 처음 만났으며 올 초 대전에 방문했을 때와 주립병원으로 의료봉사활동을 갔을 때였다.

그의 첫 마디는 대전에서 왔을 때 충남대학교 병원을 방문한 기억이었다. 그러면서 깜퐁츠낭에도 그런 선진 보건의료 시스템을 적용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번 방문에서 두 번 저녁을 함께 했는데 다른 공무원과는 다르게 그는 개인 승용차가 없는 듯 보였다.

그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 못하기에 얼마나 청렴한 공무원인지는 모르지만 이틀저녁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누었던 대화에서 공짜나 뇌물을 바란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고 도리어 자신의 주에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한 감사와 선진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깜퐁츠낭주를 위해 많은 일을 해 줄 것을 바랬다.

그 다음은 소린티라브티 주립병원장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깜퐁츠낭 주의 부지사를 지낸 엘리트집안 출신으로 개인 악어농장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상당히 부유한 편이었다. 예전에는 개인 클리닉을 운영했었지만 현재는 주립병원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젊은 지식인이었다. 특히 그는 한국에 와서 선진 의료를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었다. 이 둘은 의사이면서도 대부분의 의사들이 부수입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개인 클리닉을 갖고 있지 않고 지역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이었다.

마지막으로 깜퐁츠낭주 보리보군 교육청의 미후유 교육감이었다. 그는 여성이었는데 모두가 싫어하는 시골지역에서 캄보디아의 미래 세대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분이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도시로 가기를 원하고 심지어 시골 학교에 배정을 받으면 한 달 정도 있다고 온다간다 말도 없이 떠나는 것이 다반사인 지역에서 쓰러져 가는 교실을 건축하고 교사들을 초빙하여 시골마을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었으며 기회가 있어도 도시로 가는 것을 포기한 분이었다.

캄보디아는 아직 부정부패가 심하고 권력과 부의 편중으로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래도 그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어떤 사회나 국가든 묵묵히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그 사회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