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보다 더 일본스러운 대한민국 20%, 그들은 누구인가?
일본보다 더 일본스러운 대한민국 20%, 그들은 누구인가?
  • 조성일
  • 승인 2023.07.0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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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성일 공주참여연대 이사장
조성일 이사장 ⓒ백제뉴스
조성일 이사장 ⓒ백제뉴스

일본의 원전사고 처리수 해양투기를 앞두고 대한민국이 분열하고 있다. 철학이 부재한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것은 정당한 일인가? 문제의 본질인가?’

본질을 물어야 할 때 찬반을 말하고 정의로운 너무나 정의로운 내 편이 모든 판단에 우선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의미를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원자력 기술의 도입은 역사적 실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실수를 바로잡았습니다.”

2022년 말 0시에 독일 환경부 장관이 가동 중이던 원자력 발전소 3기의 완전 중단을 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물론 독일도 좌·우 공방이 있었고 곡절도 겪었다.

사회당과 녹색당이 연합한 좌파정권이 탈원전을 선언하였지만 메르켈을 중심으로 한 우파정권이 집권을 한 후 탈원전 정책을 백지화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철학의 나라였다.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마르크스, 엥겔스 그리고 성경책 다음으로 많이 읽었다는 짜라투스트라의 나라였다. 2011년 문제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그러자 당시 메르켈의 우파정권은 자신들이 찢어버렸던 탈원전을 10년 후인 2022년 말까지 이행하기로 합의하였고 끝내 완성하였다.

본질을 묻는 철학의 힘은 눈앞의 이익보다 힘이 세다.

유한한 삶에서 무한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철학의 본질이요 인간을 비로소 인간답게 하는 것이다.

반면 사고발생 10년 후 정작 사고당사자 일본은 오직 자신들의 당장의 이익을 위해 사고 처리수를 바다에 버리려 하고 있다.

철학의 나라와 경제적 동물의 나라는 이러하듯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같은 전범국가였지만 독일은 무한참회를 하였으나 일본은 지금도 1급 전범을 참배하며 이제는 의례적 사과마저 거부하고 있다.

IAEA의 보고서를 인용한다 하더라도 후쿠시마 원전사고 처리수의 본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처리수가 무결점 정화수가 아니라 아무리 미미하다 할지라도 방사능에 노출된 나쁜 액체라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나쁜 액체를 생명의 원천인 바다에 버리려고 하는 일본의 처사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일본과 원자력의 평화적 활용 촉진을 설립목적으로 하는 IAEA는 성경에서 진리의 말씀을 가져오듯이 과학에서 허용수치를 가져오지만 과학은 절대의 영역이 아니다.

과학은 인간의 일이요 인간은 오류를 범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도 무결점의 결점인 오류 중 하나다.

IAEA가 말하는 미미한 영향이라는 것도 지금 수준의 과학적 판단일 뿐이다. 과학은 미시적이다. 물질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미세한 과정 안에서 작용 및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기에 미시적일 수밖에 없고 그러하기에 삼라만상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낱낱의 관련성을 알지 못한다.

과학은 질량불변의 법칙은 알았지만 물질의 형질이 변하여 허공 중 어딘가 쌓이고 쌓인 것이 훗날 해류의 흐름을 바꾸고 대홍수를 부르고 동토 시베리아를 불태울 줄은 알지 못했다.

그러하듯 자연계에 방사능의 총량이 늘어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신만이 알뿐이다. 임계점에서는 1%가 물을 끓게 하고 공기 1이 풍선을 터뜨린다.

눈으로 볼 수 없다 하여 없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안다 하여 다 아는 것도 아니다. 자연계에 없던 나쁜 물질은 통제할 수 있는 한 가두어 두는 것이 마땅하다. 만들지 않는 것이 순리다. 위험한 것은 조심히 다룰수록 좋다.

어쩌면 IAEA가 말한 그 미미함도 이미 너무 큰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 일본은 그만하면 되지 않았는가? 이미 인류 앞에 너무 무도하였다. 일본은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정부보다 앞서 더 일본스럽게 방류를 조장하는 대한민국의 20% 대체 그들은 누구인가?

분단의 원초적 범죄자 일본의 손을 잡고 북한을 증오하며 전쟁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에게 돌아갈 이득은 무엇인가?

불구의 몸 한반도, 너를 이대로 두고 인류는 평화를 말할 수 없다.

/공주참여연대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