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용진이 이야기
우리 동네 용진이 이야기
  • 조성희 충남교육연구소 사무국장
  • 승인 2007.08.1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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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용진이 이야기


지금 우리 충남교육연구소에서는 느티나무 공부방 아이들의 숙제캠프가 한창이다. 숙제캠프라 하면 방학중 이런저런 핑계로 미처 다 못한 숙제나 인터넷을 활용한 보고서 등 컴퓨터나 프린터 등이 없는 농촌가정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들을 공부방 선생님들의 지도 아래 함께 해나가는 우리 공부방만의 캠프이다.

숙제캠프를 하기 전날 이런저런 말 끝에 용진이 이야기가 나왔다.

“작년에 용진이가 밤에 없어져서 놀란 것 기억나요? 혼자 운동장에서 달밤에 체조한다고...”

“재작년 동물원 갔을 때는 어떻고! 그때도 혼자 딴데로 가는 것 간신히 잡아왔잖아.”

“근데 용진이가 계절학교 이후부터 좀 달라진 것 같아요. 맨날 장난만 치고 혼을 내도 눈도 안 마주쳐 얘가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심란했는데 요즘은 좀 의젓해진 것 같지 않아요?”

우리 공부방 대표 말썽꾸러기(?) 용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가뜩이나 산만하던 아이가 작년에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 마음을 잡지 못해서인지 아이들과 툭하면 싸우고 공부시간에도 제멋대로 행동을 해 선생님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용진이가 정말 계절학교 이후로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계절학교에서 무슨 일이?

용진이가 달라진 계기를 되짚어보니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다. 계절학교에서 용진이가 속한 모둠에는 서울에서 온 재훈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재훈이는 통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질 못하고 활동에도 참여를 못하며 혼자 빙빙 돌고만 있었다. 그래서 용진이에게 재훈이가 많이 힘든가 보다고 네가 재훈이를 잘 챙겨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용진이는 재훈이를 잘 챙겼다. 재훈이를 챙기는 데 신경을 쓰다 보니 말썽을 부릴 틈이 없었는지 활동을 하다 사라지는 일도 없었고, 괜한 심통을 부리지도 않았다.

계절학교가 끝날 무렵 "용진아, 정말 고마워, 네가 재훈이를 잘 챙겨줘서 재훈이가 3박4일 동안 잘 지낼 수 있었어. 정말 우리 용진이 형 노릇 톡톡히 했는데!” 하고 칭찬을 해주었더니 “선생님들도 저 잘 봐주시잖아요.” 하고 씩 웃었다.

순간 용진이가 잘 따라주지 않는다고 걱정하던 선생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용진이도 선생님들이 자신에게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달라질 계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용진이는 자기보다 힘들어 보이는 동생을 돌보며 한뼘 더 쑥 큰 것 같다. 돌보려 해도 마음을 쉬 내주지 않는 상대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우며 재훈이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것 같다.

우리 선생님들보다 용진이 스스로가 더 의젓하게 변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지 몰랐을 뿐. 말썽꾸러기라고 낙인찍은(?) 사방의 시선이 용진이의 변화를 더디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용진이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새삼 교육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마음의 싹이 자라는 모습은 그리 쉽게 보이는 것이 아니며, 보이지 않는다고 싹이 자라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다만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