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관료제의 개혁 절실
[기고] 관료제의 개혁 절실
  • 고주환
  • 승인 2020.04.0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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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환 (사)공주시마을공동체네트워크 이사장
고주환 이시장 ⓒ백제뉴스
고주환 이시장 ⓒ백제뉴스

 

남명 조식(1501~1572)이 선조 때 올린 상소문의 제일성이 “전하, 아전이 나라를 좀먹고 있습니다.”였다. 관리는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 관리가 나라를 좀먹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백성을 좀먹는다는 것과 같다.

오늘날 관료제의 이권쟁탈은 조선시대보다 심하다. 표면화되지 않은 것은 제도적으로 층층이 저질러지는 비리(?)이기 때문이다. 사업자 위주의 행정집행은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예컨대, 균형발전특별회계로 진행되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중심지활성화사업을 위시한 제반 사업의 집행과정(정부, 자치단체, 농어촌공사, 사업자, 마을만들기지원센터, 주민)은 도저히 균형발전을 달성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명분만은 참으로 그럴듯하다. 상향식 사업이란다. 그러나 주민은 들러리고 마을에 남는 것은 규제뿐인 건물만 덩 그라니 남는다.

그리고 그 책임을 주민에게 전가한다. 주민의 역량부족이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두뇌가 모인 농림축산식품부·기획재정부·자치단체의 관리이다. 물론 담당 관리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렇게 매뉴얼을 만든 고위 관료와 정치인이다. 그렇다고 담당자가 잘못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관료제의 비대화와 그 폐해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주군이 죽고 나라가 망해도 관료는 살아남는다는 사실에서 그 심각성이 중차대하다 할 것이다. 바로 우리 5천년 역사이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살아남고 모시던 주군이 교도소에 가도 떳떳하게 돌아다닌다. 그러니 무엇을 바라겠는가?

일보 전진하여 정부·자치단체 출연의 학교법인·공기업·재단법인·사단법인 등 각종의 법인 또한 관료의 하수인이다. 사립은 여기서 거론할 사안도 되지 못한다. 이 정도면 이제 행정의 본연의 임무(헌법7조 1항)는 간 곳 없고 그들만의 잔치가 된 셈이다. 게다가 각종 위원회는 또 어떠한가? 지면으로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그 실상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실권(직위·자본)자를 꼭지 점으로 일렬로 선 나라에서 어디에 정의가 숨 쉴 것이며 어디에 서민의 삶의 질이 있겠는가?

이러한 이권쟁탈에서 소외된 자는 누구인가? 서민이다. 문왕은 정치를 함에 소외된 자를 우선으로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주왕의 학정을 피해 숨었던 당시의 원로인 백이와 태공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므로 문왕과 같은 지도자가 없다면 서민은 늘 소외계층으로 빈천을 면할 수 없는 존재이다.

교육부의 모 관리가 “국민은 개돼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참으로 훌륭한 말이며 실상을 정확히 파악한 말이다. 그렇다면 개돼지의 주인인 관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해줄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왕도정치의 시작이다. 거기다 백성을 가르쳐 예의염치와 효제의 풍속을 일으켜 인간의 도리를 다하게 함이 바로 왕도정치의 완성인 것이다.

만일 교육부 관리가 이를 알았다면 실행을 해야 할 것이다. 만일 행하지 않고 개돼지의 밥마저 뺏어 먹고 굶주리게 한다면 우리를 뛰쳐나와 주인인 관리를 물어뜯을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고위 공직자는 이를 알아 본연의 임무에 힘써주길 바란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위화도 회군으로 성립한 조선, 그 멸망의 단초는 어디에 있는가? 정도전의 죽음에 있다. 고려 충신 삼은(목은 이색, 야은 길재, 포은 정몽주)과 길을 달리하며 성리학적 개혁을 단행한 정도전의 죽음은 바로 이권쟁탈의 시작이며 조카 단종을 죽이고 등극한 세조의 비열함이 승리하였다는 것은 이미 성리학적 질서를 포기한 시정잡배의 이권쟁탈에 불과함을 여실히 증명한 것이다. 그러기에 정암 조광조의 개혁을 좌절시키며 저질러진 사화는 기득권층의 완벽한 득세를 의미한다. 율곡의 개혁안과 초려 이유태의 개혁안은 하나의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후 어디서 성리학적 질서와 개혁을 논할 수 있겠는가?

조선의 이러한 시정잡배의 이권쟁탈의 풍토는 급기야 나라를 팔아먹는 흥정에 성공하였으니, 성리학이 조선을 망쳤다는 주장은 성리학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하는 말이다. 만일 조선이 정도전의 성리학적 개혁론을 성공시켰다면 어찌 이방원이 존재할 것이며 세조가 존재할 것이며 사화가 존재할 것이며 양난이 존재할 것인가?

그나마 효제충신의 풍화가 남아 그 어떠한 회유와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지사·의사와 민초가 있었기에 삼천리 강토를 독립의 함성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어찌 세계 제1등의 민초가 아니겠는가? 정치지도자와 고위공직자는 이 우직함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의 정치와 관료는 민초의 우직함을 역이용하여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법과 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니, 그들의 총명함이 오히려 지극히 어리석다 하겠다. 따라서 현대사에서 정치인과 관료보다 더 어리숙한 병신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음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민초 본연의 양심은 위기 때마다 등장하여 4·19, 5·18, 촛불혁명으로 발현되었다. 이것은 좌를 위한 것도 아니며 우를 위한 것도 아니다. 이는 민초의 양심 본연의 발로로서 위정자들이 본받아 정령을 행할 기초이다. 이를 행함이 바로 정의의 실현이며 헌법을 준수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