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요! 난 꼭 갈 거예요" 고집불통 링풍랑
"싫어요! 난 꼭 갈 거예요" 고집불통 링풍랑
  • 제미영 기자
  • 승인 2010.04.30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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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엄마가 두 분이라 사랑도 행복도 두 배

"이제 4개월째니 위험하다. 아이 낳고 아이가 비행기 탈 수 있을 때 아이랑, 남편하고 같이 가는 것이 어떠니?"

"싫어요. 난 꼭 갈 거예요"

"그럼, 한 달 정도 지나 아이가 완전하게 자리 잡으면 그 때 가거라"

"싫어요. 혼자라도 난 꼭 갈 거예요"

▲ 2006년 베트남에서 찍은 결혼사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사는 링풍랑(25세, 베트남)과 시어머니 사이에 거의 1시간 째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대화 내용이다.

링풍랑은 현재 임신 4개월째다. 지난 2006년 남편 정영순(48세)씨와 결혼하여 한국으로 시집 온 지 4년이 되어 겨우 임신을 한 상태로 시어머니는 애지중지, 노심초사다. 그러나 링풍랑은 꼭 가야한다고 우기고 있다.

지난 밤 링풍랑이 베트남에 간다고 우기는 바람에 이를 만류하던 남편과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고, 링풍랑이 집에 간다고 가방을 싸는 바람에 집안이 난리가 났다.

지난 밤부터 아무리 말리고 설득을 해도 전혀 말을 듣지 않고 자기 고집만 내세우며 위험한 친정 나들이를 하려하는 며느리가 야속하기만 한 시어머니는 속수무책으로 며느리의 베트남 친정나들이를 만류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같이 자리한 링풍랑의 한국 친정어머니 송향순(전 공주시새마을부녀회장)씨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송향순 씨는 지난 2006년 공주시주부교실 수석 부회장으로 재임할 당시 충남에 거주하는 80쌍의 다문화가정과 충남주부교실 회원이 친정어머니 맺어주기에서 링풍랑과 인연을 맺고 친정어머니가 돼 문화와 언어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링풍랑을 정성으로 도우며 지금까지 함께해오고 있다.

링풍랑이 임신 후 입덧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영양제를 맞으며 지내다 이제 겨우 입맛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양 손 가득 과일을 싸들고 링풍랑을 찾았다. 그러고 보니 링풍랑은 한국에 오면서 어머니가 두 분 됐다.

송향순 씨는 링풍랑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어렵게 가진 아이인데 위험한 시기는 넘기고 가야잖니? 그리고 남편도 있는데 남편하고 같이 가야지 혼자가면 친정에서 속상해 하시고 너 혼자 베트남 보내고 남편하고 시어머니는 얼마나 불안해하겠니. 그러니 조금만 더 참아 보자. 응?”

대답 없이 고개만 푹 숙이고 있자 다시 한 번 설득해 본다.

“한국에 시집 온 친구들이 아이를 안고 다닐 때 얼마나 부러워했었나 생각해봐. 엄마도 그런 네 모습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고 안타까웠는데 그렇게 원하던 아이를 가졌으면 엄마인 니가 그 아이를 지켜줘야 하지 않겠니? 정 가고싶다면 조금만 참고 임신 5개월째 되어 의사선생님과 상의하고 가는 것이 어떠니?”

그제사 링풍랑은 “비행기표가 없으면 어떻게 해요? 아빠가 술 드시고 우시면서 전화를 하셨어요. 한국으로 괜히 시집보냈나 보라고 너무 멀리 있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고. 맘이 너무 아프고 가족들도 너무 보고 싶어요”

한국에 와서 아이가 생기지 않아 이런저런 일을 해왔고 지난해 일을 그만두며 4년 동안 그리웠던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이 있는 베트남에 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갑자기 임신을 하는 바람에 가지 못해 아쉬움이 컸던 링풍랑은 이번에도 또 못 가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 꼭 가야한다고 우겼던 것이다.

▲ 2006년 베트남에서 찍은 결혼사진
부모님을 한국으로 초청해서 한 달 정도 머무르시다 갈 수 있게 해 준다는 송향순 씨의 말에 링풍랑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고 계신데 연세가 많아 부모님이 한국에 오시면 생활을 하실 수 없어 한국으로 모시지도 못한다”며 울먹였다.

결국, 임신 5개월에 안착되면 가기로 결정하자 베트남에 못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이 잔뜩 굳어있던 링풍랑 얼굴에 화색이 돌고 웃음기가 맴돌았다.

한국으로 시집 온 이유에 대해 묻자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미혼인 언니, 오빠 두명, 남동생 한명 등 대가족이 함께 살고 있고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친구들은 시집을 거의 다 갔는데 가정형편이 어렵다보니 결혼할 생각을 못하다가 소개소에서 사진을 보여주는데 착하게 생겼고 좋아 보여 결정을 했다”며 결혼은 잘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살면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서는 “한국 말 배우기가 너무 어려웠고 며느리 역할이 어떤 건지 한국 정서를 잘 몰라 힘들었었다. 결혼 2년 쯤 되니까 말귀도 알아듣고 한국 정서를 알게 되면서 큰 문제는 없다”며 남편도 너무 잘해줘 1등 남편이라고 자랑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친정어머니 송향순 씨는 “그렇게 남편하고 시댁 식구들이 잘해주는데 왜 속을 썩여? 고집도 적당히 부려야지. 시어머니하고 남편 속이 까맣게 다 탔겠다.”하며 꾸짖자 어제 오늘 사이 시어머니와 남편을 애먹인 것이 미안했던지 링풍랑은 빙그레 웃으며 “베트남 못 갈까봐”라고 귓속말을 한다.

남편이 장남이어 맏며느리 역할을 해야 하는 시집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링풍랑의 시어머니는 “마음씨가 착하고 상냥하며 한국 문화를 배우고 따르려 노력을 많이 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한국 음식도 잘한다. 또 식사 때가 되면 꼭 전화를 해서 내 밥을 챙겨 마을에서도 착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며느리가 칭찬 받으니 나도 기분이 좋다”며 며느리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칠순 때는 지들이 저축한 돈으로 캄보디아 여행을 보내주어 며느리 덕에 외국 여행도 갔다 왔다”며 “내가 바라는 것이 뭐 있겠어. 저희들 아이 낳아 잘 키우고 맘 착하게 먹고 동기간 우애 좋게 지내면 다 좋은 것이지”라며 아들 장가 못보내 애닳아 하다 돌아가신 남편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신다.

▲ 두 엄마와 함께 한 링퐁랑 (왼쪽부터 시어머니, 링퐁랑, 송향순 씨)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달라는 질문에, "남편은 나를 애기처럼 대해주고 잘해줘 늘 고맙게 생각해요. 아이 낳으면 잘 키우고 잘 살자. 그리고 건강 생각해서 술은 조금 줄였으면 좋겠어"라며 영상편지 보내듯 사랑가득 담은 표정으로 말했다.

시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냐는 질문에 링풍랑은 시어머니 손을 잡고 방에 모셔다 놓고는 문을 꼭 닫고 나왔다. 그러곤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한국말을 잘 몰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때는 너무 속상했었고 식구들이 목소리를 크게 할 때는 욕하는 것 같아 남편과 많이 싸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문제는 하나도 없다. 시댁 식구들 모두 다 착하고 너무 잘해준다”며 울먹였다.

이어 “어머니 너무너무 고마워요. 건강하게 우리랑 같이 오래오래 살아줬으면 좋겠어요”라며 시어머니 앞에서는 부끄러워 못하던 사랑을 표현했다.

링풍랑의 진심 가득한 시댁 가족 사랑이 밀물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가슴 따뜻함을 간직한 채 집을 나서며 한국 친정 어머니 송향순 씨는 “아기에게 필요한 이불이나 아기용품은 친정 엄마가 해주는 거다. 그러니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고 베트남에 몸 건강히 잘 다녀와”라며 따뜻하게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