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 복원은 시대적 사명이다
마을공동체 복원은 시대적 사명이다
  • 고주환
  • 승인 2019.10.1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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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기고] 고주환 (사)공주시마을공동네트워크 이사장
고주환 이사장 ⓒ백제뉴스
고주환 이사장 ⓒ백제뉴스

 

시대를 모르는 자 지도자가 아니다. 어려서 배우고 익힘은 장성하여 실천하기 위함이다.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 배운 것을 실천함이며 그 표준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이 시대 지식인의 시대적 당무는 이 시대의 병폐를 구제하여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실현함에 있다고 하겠다.

우리 시대의 과제는 무엇인가? 균형발전・양극화・저출산・청년실업・도농격차에 따른 교육・문화・복지의 역차별・고령화 등 수 많은 문제들이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 이는 현대사가 야기한 것으로 어제오늘 생긴 일이 아니며 한 분야의 모순으로 생긴 것이 아니며 제도와 운영 전반에 걸쳐 축적된 결과물이다.

따라서 정치·경제·교육·사회·문화 전반의 총체적 모순이 야기한 것이므로 어느 한 분야의 개혁으로 치유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양극화에 따른 역차별과 청소년의 좌절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도·농의 소득격차와 교육·복지·문화의 소외와 불평등, 세계 제1의 노인자살은 헌법의 정의와 정면으로 배치됨은 물론, 어떠한 사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 정국은 보수니 좌파니 실질이 없는 정쟁만 일삼고 있다.

예컨대, 국토균형발전의 대안으로 계획되었던 행정수도의 이전이 위헌판결 남으로서 행정복합도시로 추진되었지만, 그 결과는 균형발전이라는 주제와는 아주 거리가 먼 특정 지역 개발이라는 혼잡한 행정복합도시로 귀결되고 말았다. 혁신도시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는 목적과 실천이 상반된 사례로서 정의를 구현해야 할 국가기관이 자행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의 추진은 법적 절차를 따른 것으로 아주 합법적이다. 이것이 문제이다.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문패와는 거리가 먼 합법적 행위가 법과 제도를 통해 떳떳하게 자행되는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는 나라이며 양극화와 저출산을 더욱 부추겨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헬조선이 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 대한민국 정치지도자와 각 부의 관리, 특히 행정복합도시건설청의 관리들이 양극화·저출산이 왜 야기되었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해결방법인지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이유가 이권쟁탈에 있음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또 다른 이권쟁탈 특구를 국토균형발전이란 명분으로 지금처럼 양산해낸다면 조선이 17세기 이후 개혁의 동력을 상실하고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걸었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라는 말은 권력지향적 중앙집권적 역사가 만들어낸 고질적인 풍토를 반영한 진실이다. 지금도 여전히 서울대·고시·출세라는 말이 지닌 의미 또한 개인과 가문의 영광에 불과하다는 것이 오천만 국민의 가슴에 남아 있는 한 우리 사회는 공(公)은 없고 사(私)만 존재하는 병든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사리사욕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지도자나 지식인이나 똑같다는 말이다. 심지어 정화작용을 해야 할 교육·종교마저도 그에 앞장서는 상황이니, 우리사회 어디서 어느 계층에서 희망을 찾을까?

결국 조선이 성리학이라는 문패를 내걸고 이권쟁탈에 몰두하였다면 현대사는 자유민주주의를 내걸고 이권쟁탈에 몰두하고 있는 셈이다. 도구화된 학문과 지식 그리고 교육, 그 목적은 똑같이 이권쟁탈일 뿐이다. 지식과 교육이 도구화되고 지역이 도구화되고 인간마저 도구화된다면 국회·정부·사법을 어디에 쓸까?

산업화와 도시화의 선두 주자들이 겪었던 부조리를 오늘 우리 사회는 몇 배나 큰 쓰나미로 몰려와 그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다. 정부와 각 부처가 맡은 바 소임을 다한다 해도 70여 년간 제도화 된 행정구조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제도란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탄생한 것이다. 기존의 제도와 운영방식이 야기한 문제를 제도적 틀을 바꾸지 않고 해결한다는 것이 애시당초 논리를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도와 운영방식의 근본적인 전환 없이는 미래를 열 수 없다. 고정화되고 경직화된 관료시스템이 풀뿌리민주주의와 자율·다원·창의성이라는 역동성을 잉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은 자율성・다원성・창의성이다. 이를 위해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자치분권종합계획안이다. 비록 취지와 목적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한다 해도 지금까지 제도와 운영방식이 헌법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었던 것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치 또한 기존의 관료제 속에 매몰되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무너진 마을공동체의 복원이야 말로 이 시대 새로운 패러다임 창출의 첫 관문이 되어야 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는 인간의 본성의 실현을 해치는 사회악을 제거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마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과거가 협력적 자족적 공동체적이었다면 현재는 개인적 의존적 주거 중심적으로 관계성과 역동성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는 도시화에 따른 것으로 의식주・교육・의료・문화가 대도시 의존적으로 변한데 기인한다. 도시화에 소외된 계층만 남아 있는 농촌과 지역은 하나의 거대한 양로원이 된지 오래이다. 따라서 양극화·도농격차를 넘어서 지역 소멸은 자명한 것이며 그 원인 또한 자명하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청사진은 무엇인가? 삼권분립의 3부는 어떠해야 하며 중앙과 지방은 어떤 관계이며 주민주권 시대 주민과 행정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불변의 명제가 있다면 민주공화국을 명문화한 대한민국은 자유・평등・정의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며 오천만 모두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는 지식 측면에서 산업의 분업과 분화에 따라 전문화 되었다. 지식의 전문화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각 분야의 산업발전을 견인하였다. 그 혜택으로 우리는 물질적 풍요와 편리성을 구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 암운을 드리우는 문제점 또한 지식의 전문화에 따른 결실을 정의롭게 사용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임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조선이 농업경제에 기반을 둔 신분제 사회였다면 대한민국은 산업화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사회이다. 신분제 사회의 문제점이 신분의 세습과 고착화에 따른 사회계층의 역동성의 상실이라면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 또한 자본의 세습과 고착화에 따른 역동성의 상실이다. 특히 황금만능주의와 천민자본주의의 역기능은 자유와 평등을 양대 축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의 헌법질서를 붕괴시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 공자가 설파한 ‘가난이 근심이 아니라 균등하지 못함이 근심이다(不患貧而患不均).’는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택하더라도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최고의 진리이다.

신분이든 자본이든 군주제든 대의제든 그 궁극의 목적은 인간다운 삶의 실현이며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따라서 정치는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실현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정의의 실현이다. 그러므로 보수·진보는 시대에 따른 성향에 불과한 것이다. 오늘의 시대가 정의실현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진보적 성향을 띠어야 할 것이고 문제가 없다면 보수의 성향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결국 오늘 우리가 봉착한 사회문제는 도시화와 자본주의가 초래한 문제를 정치가 풀어내지 못함으로써 야기된 부조리의 누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균형발전・양극화・저출산 등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관주도적 행정과 제도가 중심이었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은 민주도적 행정지원과 사람 중심이어야 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없는 행정·교육의 자치를 논함은 하나의 구호에 불과한 문패정치에 지나지 않는다.

아울러 지금의 인구비례에 의한 국회의원 선거방식을 인구와 면적을 비율로 한 선출방식으로 보완할 것을 제안한다. 균형발전과 양극화 특히 도농격차 문제는 지금의 선출방식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유권자를 의식한 지역이기주의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도시 집중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행정의 예산편성 또한 인구와 면적을 합산한 비율로 산정한다면 7년 안에 가시적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굳이 특별예산을 편성하지 않아도 해결될 것이다. 이는 인시제의(因時制宜)에 따른 정의의 실현방책이다.

주민의 자발성과 역동성이 없는 개혁은 성공하지 못한다. 마을공동체 복원은 경직화되고 사막화된 개인 간의 관계성 회복을 통하여 내재적 동인을 견인함으로써 주민이 자발적으로 흥기하여 풀뿌리민주주의를 이룩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마을공동체가 활성화 될 것이며 균형발전・양극화・저출산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마을공동체 복원의 첫째 과제는 인간관계성의 회복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인간의 통과의례인 관혼상제를 주민이 함께 함으로써 소통과 화합의 인간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이는 지난 70여 년간 산업화·도시화·상업화에 속에서 마지막까지 공동체 역할을 수행했던 관혼상제마저도 상업화됨으로써 나타난 인간소외를 극복하는 인간주의 운동이다. 또한 상업화는 비록 편리성을 증대시켰지만, 인간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함으로써 목적적 존재인 인간을 수단적 도구적 존재로 전락시킨 비인간화 현상을 극복하는 유일한 통로가 될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한결같이 “미래사회의 핵심철학은 협동주의”라고 주장한다. 4차 산업의 물결 속에 인간의 삶의 질과 인간다움을 실현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가속화된 개인주의 논리로 살아갈 수 없음을 예측한 것이다. 결국 농경사회의 공동체가 농업이라는 단일 업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라면 미래사회는 다양한 업을 토대로 한 공동체 속에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감을 말한다.

관혼상제를 통한 마을공동체 복원은 다양한 업을 지닌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치러야할 통과의례를 지역 주민이 함께 함으로써 공동체 활성화의 기본 토대를 제공한다. 이는 헌법 제34조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와 4항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에 근거한 것으로서 당연히 정부와 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이다.

마을공동체 복원운동의 의의는 주민의 소통과 화합을 촉진시켜 인적 통합은 물론이고 이를 토대로 도시 의존적이던 교육·의료·문화·경제적 토대를 공동체 구성원의 협력으로 해결함으로써 도농격차에 따른 역차별을 해소하는 출발점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