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의 기쁨
차 한 잔의 기쁨
  • 장재을 국선도 명상 지도자
  • 승인 2007.07.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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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자판기가 주는 커피 한 잔을 얼마나 좋아 하시나요?

저는 유난히 자판기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오늘은 종이컵에 담긴 300원 짜리 맛있는 커피 향을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길거리 커피를 좋아하는 제일 큰 이유는 이 시간 동안은 하루 중 가장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깐이지만 이 시간에는 모든 바쁜 일을 잊고, 맘껏 여유를 즐길 수 있습니다. 또 싸구려지만 결코 뒤지지 않는 그윽한 향과 종이컵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도 맛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집에서 직장까지 오가는 길에 몇 군데 단골 자판기를 확보해 놓고 있습니다. 또 경관 좋고 시원한 곳에 있는 새로운 자판기를 은연중에 살펴보며 점찍어놓는 버릇도 있습니다.

아침저녁 출퇴근을 하면서 단골 자판기에 들러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꿀보다 맛있습니다. 또 덤으로 생기는 한가한 시간도 참 좋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고 정리하는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얻는 또 하나의 특별한 기쁨이 있습니다.

차를 마시다보면 저절로 명상에 잠기는 때가 많습니다. 차 마시는 일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종이컵을 들고 명상에 잠기다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에게 저절로 마음이 가기 시작합니다. 300원 짜리 작은 친구에게 큰 위로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따뜻한 눈길을 받아보지 못하는 존재들이 허다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보잘것없고 초라한 것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이런 친구들에게 눈길을 주고, 아는 척을 해주고. 대접을 해주면 이 친구들은 가만히 있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욱 크게 아는 척을 해주며 응답을 해옵니다.

흙 묻은 신발, 냄새나는 양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돌멩이, 무수하게 피어있는 잡초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소외된 친구들이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에서도 받을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을 보내줍니다. 그 축복이 너무도 커서 온 몸의 세포들이 진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숨도 저절로 밀려들어와 깊어지고 물이 넘쳐흐르듯이 기쁨이 온 몸에 넘쳐흐릅니다.

이렇게 작은 존재들은 너무도 흔하고 많습니다. 너무 많기 때문에 가장 크고 특별한 기쁨을 선물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소외된 친구들에게 아름다운 눈길을 한 번 보내보면 어떨까요.

저처럼 싸고 좋은 자판기 커피를 만나보셔도 좋습니다. 기왕이면 몸에 좋다는 국산차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천천히 깊은 맛을 느껴주면서 귀하게 대접해 주세요.

어떤 분들은 10초도 안 돼서 훌렁 마셔버리는 분들도 많던데 그렇게 하지 말고 고급호텔에서 거금을 주고 마시는 차라고 생각해 주세요.

최고의 인테리어와 진귀한 보석과 장식물에 둘러 쌓여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마시고 남은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휙 던지지 말고 가만히 모셔보세요.

세상 만물 속에 가득히 스며있는 가장 귀한 하늘을 맞이해 보세요.

종이컵 속에 가득히 스며있는 신성한 하늘을 마셔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