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차려진 밥상 앞, 주저하는 이춘희 시장
[단상] 차려진 밥상 앞, 주저하는 이춘희 시장
  • 유재근 기자
  • 승인 2018.11.11 17: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춘희 세종시장 ⓒ백제뉴스
이춘희 세종시장 ⓒ백제뉴스

 

KTX 세종역 이슈가 세종시만의 바람이었을 땐 지역 이기주의처럼 비쳐지기도 했지만 호남 의원들이 가세하며 이제 전국의 이슈가 됐다. 도리어 ‘오송역 사수’가 충북의 지역 이기주의로 간주되면서 세종역 신설 찬성여론은 확산되고 있다.

원래부터 세종의 관문역은 오송역이었으니 세종역 신설은 찬성할 수 없다는 충북과 호남선이 지나가고 있는 발산리에 간이역을 짓겠다는 세종시. 여기에 호남 의원들이 직선화를 하자고 나서면서 판이 커졌다.

KTX가 오송에서 분기함으로 인해 호남선이 크게 우회하고 있는데 이를 직선화하면서 중간에 세종역을 만들자는 게 호남의 입장이다. 현재 추진 계획인 평택-오송 복복선화 대신 직선화를 하면 예산차이도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로 인해 충북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단순히 세종역만 막으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직선화를 한다면 호남선 자체가 오송을 지나지 않기 때문에 훨씬 더 큰 손실이다. 일부에서는 차라리 발산리 세종역 반대를 접고 호남선 선로를 지키는 출구전략을 짜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분위기에 제동을 건 게 이춘희 시장이다. 이 시장은 지난 8일 정례 브리핑에서 내년도 세종역 신설 연구용역비 편성을 밝히며 호남지역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호남고속철 직선화와 관련해선 “시 차원에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종역을 전국 이슈로 끌어준 호남 의원들에겐 물벼락을, 공황상태의 충북에는 가뭄의 단비 같은 발언이었다.

국회의사당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세종시는 현재 국회 분원 설치가 지연되고 있는 것에 대해 큰 반발을 갖고 있다. 지난 7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인근 지역구 김종민 의원을 앞세워 유인태 국회사무총장에게 왜 분원 설치에 대한 연구용역을 서두르지 않는지에 대한 지적을 했다.

이에 유 사무총장은 “운영위에서 분원이라도 한다고 해야 용역을 주지, 타당성 조사는 작년에 했다고 한다"며 여기에 더해 "개헌해서 국회가 (세종시로) 싹 가지, 무슨 분원을 하려고 그러나"라고 말했다.

세종시 지역사회에서는 이에 대해서도 유 사무총장이 세종 분원에 대한 공을 국회에 떠넘겼다고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국회 전체를 옮기자는 주장은 하지 못하고 왜 겨우 분원 갖고만 그러느냐의 지적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전 정권에서 야당 지자체장이라 추진이 힘들다는 주장은 이제 먹히지도 않는다. 정권이 바뀌었으면 적어도 그간의 입장 플러스알파는 가져오고도 남았어야 한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읍소만 하는 태도는 여전하다.

왜 그럴까? 일각에서는 호남선 직선화와 국회 전체 이전 자체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바라지 않는다는 설이 있다. 세종시 의원으로 자신의 총선 공약이었던 간이역과 분원까지는 추진하지만 당 대표로서 호남선 직선화나 국회 이전은 다음 총선에서 충북과 수도권 민심에 도움이 안 되니 싫다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 시장이 이 대표의 입장을 좇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세종시의 입장’에서 뭐가 더 좋을지는 분명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서라도 강자에게 반기를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차려진 밥상 앞에서 한 가운데 직구를 던지지 못하고 유인구로만 승부하는 이춘희 시장의 행정가적 태도는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