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잘 담그는 윤아 엄마 릴넷
김치 잘 담그는 윤아 엄마 릴넷
  • 제미영 기자
  • 승인 2009.10.29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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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공주시 신풍면 대룡리 마을 행사에 참여하여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대룡리 부녀회원들 중 앳된 모습의 새색시가 눈에 띈다.

한복이 참 잘 어울리는 새색시는 2007년 6월 필리핀에서 공주시 신풍면 대룡리 이덕희(35세)씨와 결혼하여 한국 생활을 하고 있는 릴넷(28세)으로 부부사이에 딸 윤아(2세)가 있다.

▲ 부인 릴넷. 딸 윤아. 남편 이덕희씨

△한복이 잘 어울리는데 오늘 행사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대룡리 새마을 부녀회원이어서 마을 행사가 있을 때면 늘 참여한다. 오늘은 대룡리 농산물 가공체험관이 준공식을 갖게 되어 손님을 많이 초대했으니 당연히 도와줘야한다.
난 막내라 심부름만 하면 된다.


△필리핀에서의 생활은?

-혼자 생선가게를 했다. 가족들의 생계유지와 동생들 학비를 대기 위해서다.
부모님이 사시는 곳은 시골이어 교육여건도 좋지 않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쌀이 없어 옥수수 등을 먹으며 생활할 수밖에 없었으며 집이 없어 가족들이 헤어져 살았었다.
나는 동생 세 명과 삼촌집에 얹혀살았고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은 시골 고향에서 살았다.
지금은 남편 덕분에 마닐라에 집을 얻어 가족이 다 같이 모여살고 있다.

 

△한국으로 시집오게 된 동기는?

-필리핀 가족으로 엄마, 아빠가 계시고 난 7녀 중 장녀이며 막내는 11세로 아직 어리다.
또 동생이 간호대학을 다니는데 동생 공부시키려다보니 한국으로 시집 올 생각을 하게 됐다.
필리핀 대학의 경우 1학년 학비는 적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비가 점점 올라 4학년 한 학기 등록금이 백만 원이 넘는다. 동생이 4학년 졸업반인데 남편이 그동안 동생 등록금을 대주었다.
“처제 공부시키는 것이니 그 정도는 해줘야지요.”라며 옆에 앉아있던 남편 이덕희 씨가 겸언쩍은 웃음을 지으며 “처음 결혼 얘기가 오갈 때 동생 학비를 대줘야한다고 하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었다”고 부언설명을 해주었다.

▲ 한국음식을 좋아하고 또 잘 만든다는 릴넷

△릴넷은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잘 만든다고 들었는데..

-한국 음식은 다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김치찌개, 갈비탕, 감자탕, 동태탕, 회 등을 특히 좋아한다. 김치는 물론 좋아하고 담그기도 한다.

배추김치, 오이김치, 총각김치는 직접 만들 수 있다.
“릴넷은 식성이 좋아 가리는 음식이 없고 음식 솜씨가 좋아 한번 만들어 주면 그 다음부터는 혼자 그 음식을 만든다”고 남편이 부인 자랑을 늘어놓았다.


△하루를 주로 무얼하며 지내나?

-일이 많다. 남편이 농사를 짓고 방울토마토 등 시설재배를 하다 보니 일년내내 일이 끊이질 않는다.
일 하시는 분들 밥도 해줘야하고 할머니하고 아버지가 계시지만 할머니는 나이가 많으셔서 집안일도 혼자 해야 한다.
그래서 친구가 가까이에 살지만 만나기 어렵다.

이덕희 씨는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옆 동네에 릴넷 친구가 살지만 자주 만날 수가 없다. 그 집도 시설재배를 하기 때문에 늘 일이 많아 가끔 옆 동 하우스 일을 하다가 얼굴을 보고 반가워하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남편이 서운하게 하는 건 없냐는 물음에 릴넷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덕희 씨는 필리핀에 컴퓨터를 사서 보내 화상 전화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등 세심한 배려로 릴넷의 마음을 잘 보듬어 준다고 한다.

 

△부부싸움도 하나요?

-수줍게 웃기만 하는 릴넷을 대신해 이덕희 씨는 “초반에 사소한 것을 갖고 삐지는 일이 잦았다. 예를 들면 금요일에 유구 도서관에 가는 날인데 내가 일이 많고 바쁘다보니 잊게 된다. 그러면 릴넷은 말을 안한다. 약속을 안지켰다고..
그런데 좀 지나니 사소한 건 그냥 지나가는 등 릴넷 성격이 낙천적인거 같다. 편하게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하니 그 뒤로는 싸우는 일이 없었다.”고 얘기했다.

▲ 방울토마토를 납품하기 위해 포장을 하고 있다
△한국에 시집와 지내면서 불편하고 어려웠던 점은?

-한국말이 많이 서툴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데 처음에는 한글을 직접 방문하여 가르쳐주는 서비스를 받았는데 아이를 낳고 한 두 번 빠지니 이젠 오질 않는다.
여기는 버스 편도 좋지 않아 남편이 직접 차를 태워 줘야하는 형편이라 일이 항시 있는 남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한국말을 배우고 싶다. 유구도서관에서 연락이오면 겨우 참석할 수 있으나 공주에서는 연락이 없어 다문화가정 행사에도 참석한 적이 없다.

이덕희 씨는 “교통이 불편한 지역을 우선순위로 한글 방문 서비스를 해줘야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유구도서관에 프로그램이 있지만 아이를 데리고 가야하고 차 시간도 맞지 않아 먼 거리에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심정을 토로했다.
그런데 남편 이덕희 씨가 필리핀으로 이민 갈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혼혈아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심해 윤아를 키우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고, 또, 농사짓는 농민들은 죽어라 뛰지 않으면 저축은 고사하고 먹고살기도 어려운 게 한국생활”이라고 지금의 어려운 심정을 토로하며 “우선 필리핀에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언가를 찾아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생각했던 삶은 이런 게 아니다. 쉬는 날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너무 바쁘고 치열하지 않는 것이 없다. 맘이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필리핀의 경우 물이 모자라 비가 올 때만 농사를 짓는데도 2모작을 한다고 하니 샘을 파서 조건을 갖추면 3모작도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고 필리핀 갈 생각을 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또, 올 12월에 필리핀으로 가서 농사지을 땅을 보고 올 계획으로 “지금의 계획대로 된다면 필리핀과 한국을 오가며 지내고 아이들 교육도 필리핀에서 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와 할머니도 필리핀으로 같이 가셨으면 하는데 어림도 없다고 하시니 그것이 제일 맘에 걸린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 부부를 보니 ‘이들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서로 의지하고 감싸며 문화의 차이, 생각의 차이를 하나하나 맞춰가며 생활하고 있었다.

다소곳하게 남편의 말을 잘 따르는 릴넷은 한국 생활을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너무 바쁘게 지내는 하루하루가 힘겹다고 한다.

남편 또한 같은 생각을 하며 작지만 소중한 여유 있는 삶을 찾아 필리핀으로의 이민을 꿈꾸고 있는 이들 부부가 한국에서는 그러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