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에도 행복한 꼬마신부 판티짠
작은 것에도 행복한 꼬마신부 판티짠
  • 제미영 기자
  • 승인 2009.09.11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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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자녀 어린이집 무료 혜택 잘 몰라
▲ 판티 짠 가족

베트남에서 시집 온 판티짠(25세)을 처음 만났을 때가 2007년 1월쯤으로 큰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오랜 시간동안 만나지 못하고 다시 판티짠을 만난 것은 8월 중순 쯤, 장맛비가 제법 내리던 날이었다.

올해 결혼 3년차인 판티짠은 2006년 8월 4일 박용순(49세)씨를 만나 한국으로 시집 왔으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시부모님과 함께 공주시 웅진동에 살고 있다.

개구쟁이 큰아들 경수(3살)는 온종일 내리는 비로 밖에 나가지 못하고 자그마한 집안이 놀이터인 양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할아버지와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거실에는 100일이 채 안된 딸 미주가 엄마의 젖을 물고 있었고, 그런 미주를 꼭 안은 채 행복하게 바라보는 아기엄마 판티짠, 그 옆에 물끄러미 아이와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남편 박용순 씨,

▲ 폐지를 주워 생활비를 충당하는 판티 짠 남편 박용순씨.
판티짠 네는 수입원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할아버지는 심장이 좋지 않아 일을 할 수 없고, 할머니도 연세가 72세로 연로해서 힘든 일은 못하고 그나마 소소한 일자리마저도 없어진지 오래다. 지체장애 2급인 남편 박용순 씨는 공사장에서 잡부로 일을 했으나 지금은 그마저도 일거리가 없어 박스를 주워 팔아 겨우 기저귀 값을 감당하고 있다.

아기 분유 값은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아기 분유는 보건소에서 지원해 주고 있어 다행이지만 심장도 좋지 않은 할아버지가 큰 아이를 돌보느라 고생이 많으시다”며 판티짠은 시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웃음으로 건넸다.

다문화 가정 자녀는 국가에서 어린이집을 무료로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지만 동사무소에서 제대로 알리지 않아 판티짠네 가족은 그 내용을 알지 못해 지금까지 큰 아이를 집안에만 두고 있었다.

▲ 다문화가정 이주여성자 교육 수료증을 받고 있는 판티 짠.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인데, 공무원들이 이런 좋은 제도를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홍보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또,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조금만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큰 아들 경수는 현재 집 근처 어린이집에 다니며 보통 가정의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뛰놀고 있다.

항상 웃음 가득한 판티짠을 보며 행복하냐고 물었다.
판티짠은 “네 행복해요. 좋아요”라고 주저 없이 답했다.
그러고는 “한 달에 30만 원 정도 수입이 있었으면 더 좋겠어요. 또, 남편이 술을 조금 줄였으면 정말 좋겠어요.”라며 잇몸이 다 들어나도록 환하게 웃었다.

판티짠을 처음 만났을 당시 2007년 1월 어느 날 나는 똑 같은 질문을 했었다.
그때도 “네 행복해요. 남편이 착해요. 그래서 정말 좋아요”라고 수줍게 웃었었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일반사람들의 삶과 비교하니 씁쓸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소박한 판티짠의 소망이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한다.

한국말이 아직 서툰 판티짠은 지금 한국어 배우기에 열심이며 아이들을 씩씩하고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최고 바람이라고 말했다.
“판티짠의 보물인 큰 아들 경수, 작은 딸 미주야! 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절대 저버리지 말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다오”

이들 부부는 오는 10월 백제문화제 기간에 있을 합동결혼식을 치를 예정이다. 한국에 와서 한복이 입고 싶어 시어머니하고 한복집에 갔다 한복 가격에 놀라 도망 나온 경험이 있는 판티짠은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한복을 입고 결혼식을 올린다는 생각에 마냥 행복해하고 있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이들 부부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과 같은 행복이 늘 함께하길 기원한다.

한편, 지난 7월 판티짠 친정 부모님은 새마을운동중앙회에서 실시한 결혼이민자 친정부모 초청사업에 초청돼 공주를 방문하여 딸의 한국생활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직접 보고 만족해서 돌아갔다고 한다.
판티짠의 친정어머니는 딸에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 마음이 흐뭇하다”며 “열심히 살아라”라고 말했다.

한국으로 시집온 후 한 번도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던 판티짠에게는 지금도 부모님의 방문이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