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
연평해전
  • 유승광
  • 승인 2017.03.1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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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승광
© 백제뉴스

제2회 서해수호의 날이 10여 일 앞으로 다가오다 보니 작년에 보았던 영화 「연평해전」이 머리에 떠오른다.

평소 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 편인 필자는 제2연평해전의 호국영웅인 故 한상국 상사의 흉상을 그의 모교인 광천제일고등학교에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해나감에 있어 그 분이 어떠한 분이고 제2연평해전에서 어떠한 공적을 남기셨는지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영화 「연평해전」을 관람하게 되었다.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해 준 영화였다.

우선 제2연평해전에서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다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참수리 357호정 장병들에 대한 깊은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그 당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벌어지고 있던 때로써,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 2002년 6월 29일은 마침 우리나라의 마지막 경기인 터키와의 3·4위전이 펼쳐지던 날이었다.

장병들이 월드컵에서의 뜻밖의 성과에 들떠 환호하는 4천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못 볼 수도 있는 우리나라의 명경기들을 마음껏 보지 못한 점부터가 안쓰러웠다.

그것뿐만 아니라 「경고방송 · 시위기동 · 밀어내기 작전 · 경고사격 · 조준격파사격」이라는 당시의 5단계 교전 규칙으로 인해 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에 대해 사격으로 응징하지 못하고 있다가 선제공격을 받고 장병들이 피투성이가 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다음으로 참수리 357호정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윤영하 정장은 기습공격을 받아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말하는 것조차 힘들게 된 상황에서도 배와 장병들을 구하기 위해 끝까지 무전기로 지시를 내렸고, 조타수인 한상국 상사는 오른 손의 감각이 무뎌지고 조타실이 화염에 휩싸여 서 있기 힘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운항키를 놓지 않고 동료들의 항전을 도왔으며, 의무병인 박동혁 병장은 총탄이 계속 쏟아져 들어오는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도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분주히 갑판 위를 돌아다니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영화 「연평해전」은 제2연평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써, 그 이전인 1999년 6월 15일에는 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여 남하한 북한 경비정과 어뢰정이 우리 해군의 퇴각 요구에 계속 불응하다 소총과 기관포를 발사하며 우리 고속정과 초계함을 공격해 왔고, 이로 인해 7명의 우리 장병이 부상당하여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다(제1연평해전).

2010년 3월 26일에는 백령도 근처에서 우리 해군 PCC-772 천안함이 두 동강나면서 침몰했고 이로 인해 장병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었다. 우리나라 10개 전문기관의 전문가 25명과 군 전문가 22명, 국회 추천 전문위원 3명, 미국 · 호주 · 영국 · 스웨덴 등 4개국 전문가 24명으로 구성된 민군 합동조사단은 북한에서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천안함의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했다고 발표했다(천안함 피격).

그로부터 1년도 채 안 된 2010년 11월 23일, 북한은 우리의 정당한 포격 훈련을 트집 잡아 연평도의 우리 해병대 기지와 민간인 마을에 해안포와 곡사포로 추정되는 포탄 100여 발을 발사했다. 이는 휴전 협정 이래 민간인을 상대로 한 최초의 대규모 군사 공격에 해당하는 것으로써, 이로 인해 해병대 장병 2명이 사망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민간인은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연평도 포격).

이들은 비교적 최근의 사건들로써, 이 외에도 북한은 어마어마한 인적·물적 피해를 가져온 6·25 전쟁을 일으킨 것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대한민국 해군 56함 침몰 사건(1967년)’, ‘1·21 사태(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1968년)’,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1976년)’,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1983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1987년)’, ‘강릉 지역 무장공비 침투 사건(1996년)’ 등 갖은 도발과 만행을 일삼아 왔다.

통일은 우리 민족이 풀어야 할 숙명적인 과제에 해당하지만, 쌀 지원 · 개성공단 운영 등 북한에 대한 각종 호의 및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상식적인 도발과 만행을 지속해 온 북한의 행태를 미루어볼 때 우리가 강한 국력과 호국정신이 없는 상태로 북한에 선처만 베푼다면 그들은 우리를 우습게 여기고 호시탐탐 도발 및 적화통일의 기회를 엿볼 것임이 너무나도 명백하다.

진정으로 살기 좋은 통일한국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한 채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북한과 같은 형태가 아닌 국민들이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 상태에서 함께 행복한 미래를 꾸려 나가는 우리나라와 같은 형태로 통일되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우리는 평소 국력을 신장하기 위해 힘쓰는 동시에 때로는 상식을 벗어난 북한의 도발을 강력하게 응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서해수호의 날’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지정된 것으로써, 북한의 도발에 맞서 고귀한 생명을 바친 호국용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함께 추모하고 7·27 정전협정 이후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을 상기하여 안보의식을 다지고 “국가를 위한 희생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확고한 정부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자발적인 호국정신을 고취하고 튼튼한 안보가 지속적인 경제발전 및 평화통일의 기반이 된다는 범국민적 인식을 확산하고자 작년부터 3월 넷째 금요일이 서해수호의 날로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각자의 생활에 바쁘고 여유가 부족하겠지만, 두 번째 서해수호의 날이 될 오는 3월 24일 하루만큼은 잠시만이라도 틈을 내어 이러한 서해수호의 날 지정의 의미를 음미해 보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장병들의 거룩한 희생을 떠올리며 애국심 및 호국정신을 새롭게 다지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충남동부보훈지청 보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