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탄 5남매 운동화'에 쏟아진 따뜻한 손길
'불에 탄 5남매 운동화'에 쏟아진 따뜻한 손길
  • 김종술 기자
  • 승인 2017.02.14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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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참여자치시민연대 ‘시민 모금’ 후원 통장(13일 오전 11시)에도 398만 원이 모금됐다. © 김종술

숯덩이로 변해 형체만 남은 5남매의 작은 운동화와 타다만 공책, 상장... 지난 8일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 충남 공주 '5남매'의 보금자리 위에는 칼바람만 불었다.

서른아홉 살의 가장은 앞 일이 깜깜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그날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안타까운 소식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불탄 자리 위에 온정의 손길이 쌓이고 있다.

"많이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지난 8일 충남 공주시 계룡면 농가주택이 화목 보일러 연통과열로 전소됐다. 서른아홉 가장이 꾸려가는 빠듯한 살림에 기름 값 좀 아끼자고 들여놓은 화목난로가 과열돼서 생긴 일이다.

12살(딸), 11살(아들), 10살(아들), 7살(아들), 14개월(딸) 2녀 3남의 일곱 식구는 한순간의 화재로 칼바람이 몰아치는 길거리로 나앉았다.<오마이뉴스>와 <백제뉴스>는 이튿날 오남매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렸다.

이들이 다시 화목한 집에서 단란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자는 '시민 모금'을 제안했다. 조립식 주택을 짓는 자재비 3천만 원 정도를 '좋은 기사 원고료'로 모금하자는 것이다.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힘내세요, 하필 겨울이라 마음이 넘 슬픕니다."(박호경)"

많이 못 드려서 죄송요! 기운내세요!"(곽동운)

"얼른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신경써주세요. 훈훈한 기사 감사드립니다."(이경선)

"아직까진 이 사회가 따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두 아이의 엄마인지라 맘이 많이 아픕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두 분 힘내시고요. 화이팅^^"(김은미)

13일 현재(오전 10시) 1000원에서부터 10만 원에 이르기까지 십시일반, 358명이 총 607만5000원을 후원했다.

옷가지와 학용품, 후원금 이어져

공주지역에서도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의 옷과 학용품을 보내오고 있다.

한쪽 벽면을 장식해야 할 상장은 반쯤 타버렸다. © 김종술

지역의 건설노조원들은 지난 10일 시커멓게 불탄 집을 걷어냈다. '시민 모금'을 주도하고 있는 공주참여자치시민연대 계좌에도 후원금이 들어오고 있다. 공주참여자치시민연대 '시민 모금' 후원 통장(오전 11시 현재)에도 398만 원이 모금됐다.

인근 사찰인 갑사의 김철호 사무장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게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다. 특히 갑사가 위치한 계룡면에서 일어난 화마에 이웃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자비를 실천하고자 한다"며 통 큰 후원(1백만 원)을 해주었다. 지역주민의 개별적 후원도 이어지고 있다.

10km로 떨어진 우성면 두만리에 거주하는 초등학생 형제도 용돈을 모으고 있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조립식 주택을 짓는 데 필요한 자재비만 3천만 원 정도라, 많이 모자라는 상황이다. 10일 다시 찾아간 충남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 농가주택 화재 장소는 의용소방대원들과 지역주민들에 의해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밀려드는 도움의 손길에 5남매의 아빠 오산권 씨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옆에서 격려하던 조두식 이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산권) 참 착한 사람으로 직장을 다니면서도 마을에 일이 있을 때마다 발 벗고 동참했던 주민이자 청년회 회원이다. 다섯 아이를 키우는데 기어 다니는 아이까지 보면 볼수록 안타깝다. 아이 엄마도 애들이 많고 어려서 양육하기 힘들어 직장은 다니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이어 "누나도 장애를 얻어 같이 생활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고, 오늘도 부모들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사이에 마을회관 바닥에서 애가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 속상했다"며 "(집짓기) 도움을 주시면 마을에서도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김지철 충남 교육감은 오남매 화재 사건을 보고 받고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공주교육지원청 이연주 교육장과 아이 셋이 다니는 계룡초등학교 이송민 학교장도 생활물품과 금일봉을 전달했다.

화재 소식을 듣고 찾아온 친구와 오산권씨가 불탄 집을 돌아보며 위로하고 있다. © 김종술

학생들이 다니는 학부모들도 '시민 모금'에 동참하고 있다. 김정섭 전 공주시장 후보도 현장을 찾았다. 집짓기 재능기부를 약속했던 윤여관 공주참여자치시민연대 교육문화팀장은 화재로 전소된 인근 부모님 거주지에 25평 정도 되는 보금자리 밑그림을 그렸다.

계룡면사무소 인근 한 주민은 집을 짓는 기간 동안 일곱 가족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임대해 주었다.

"우리 부부는 길거리에서 자도 괜찮은데..."

주변에서의 온정이 쏟아지자 사고 당일 우황청심환을 먹고도 울기만 하던 아이들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하지만 5남매의 엄마 박미숙씨는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했다.

"아이들 아빠 퇴근 시간에 저녁준비를 하는데 환기구 틈으로 시뻘건 불이 보이는데 핸드폰을 찾기도 힘들 정도로 정신이 없었어요. 아이들 아빠에게 연락한 뒤 아이들 안고 나왔어요. 제가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그는 "우리 부부는 길거리에서 자도 괜찮다"면서도 "아이들이 따뜻한 공간에서 지내도록 도움을 주신다면 반듯하게 자랄 수 있도록 키우면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KBS 방송국이 기자에게 연락을 해왔다. 화목한 가정에 아이들을 생각하는 아빠의 마음이 묻어난다며 취재를 통해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오산권씨는 거절의 뜻을 전해왔다.

"고맙기는 하지만... 불이 나고서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합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큰딸은 눈치만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더 아픕니다. 방송을 타고 아이들이 놀림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화목 보일러 연통과열로 잿더미로 변한 농가는 계룡면 의용소방대와 지역민들의 도움으로 말끔하게 치웠다. © 김종술

그는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집이 생길 수도 있는데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먼저 생각하는 고지식한 아빠다.

그는 월 190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일곱 식구가 살아가면서도 자신보다 상황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매달 4만 원을 기부해 오고 있다. 그런 '바보 아빠'를 돕고 싶다.

기자는 이번 취재 과정에서 "개인 부주의로 사고가 났는데, 그럴 때마다 집을 지어 줄 건가?"라는 항의 전화도 받았다. 공주시 재난안전과에 임시 거주할 수 있는 컨테이너 숙소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주 5남매의 불행은 언제든 다른 가정을 덮칠 수 있다. 그래서 더 '바보 아빠'를 돕고 싶다. 불에 탄 5남매의 운동화를 새 것으로 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