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의 정체성 잃는 불안한 외줄타기
안희정의 정체성 잃는 불안한 외줄타기
  • 유재근 기자
  • 승인 2017.02.0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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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단상>유재근
© 백제뉴스

무섭게 치고 오르고 있다.

연초만 하더라도 문재인, 이재명에 이어 당 내 3위권의 기타 후보군에 속해있던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한 달 만에 가파르게 인기를 얻으며 몇몇 여론조사에서는 여야 통틀어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인지도가 아직 부족하지만 본격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 다를 것’이라던 당당함이 입증된 셈이다.

안 지사의 상승세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긴 어렵다. 본인의 주장대로 대선 레이스가 이어지면서 점점 자신의 이미지나 정책이 국민들에게 호감을 산 부분도 있고, 문 전대표보다는 안 지사에게서 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향수를 느낀 친노 지지자들이 응원을 보낸 면도 있을 테고, 지지도가 한창 올라갈 시점에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출마포기를 선언하며 중도 보수층, 충청 민심이 플러스 요인이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며칠의 발언에서 그 상승세에 브레이크가 걸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새누리당과의 대연정도 필요하다는 인터뷰에서 촉발이 되기 시작한 지지자들의 분노는 지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당시 ‘사법부 판단은 늘 존중해야 한다’고 했던 이야기까지 들고 나오면서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물론 의회민주주의 원칙에서 다수당이나 야당과도 소통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또 법과 제도의 원칙에 따라 구속여부가 결정된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그 말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 사태에서 공권력이 사적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또 집권당과 재벌들, 사법당국이 정권의 지시대로 농락된 것을 본 국민들은 그들을 해체,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여길 뿐, 결코 파트너로 생각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안 지사의 ‘원칙론’은 시류와 동떨어진 소리 같기도 하다.

이에 이재명 시장은 강력하게 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문 전 대표도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대연정 대상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지지율 상승세에서도 본인이 중심이 된 특별한 이슈를 갖지 못했던 안 지사로서는 이번 발언을 통해 민주당의 다른 주자들과 차별성을 얻은 반면 야당의 정체성은 잃게 됐다.

이렇게 ‘자기편’에서는 공격을 당하는 반면 ‘상대편’에서는 지지를 받는 엉뚱한 모습이다. 새누리당의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안희정 지사의 대연정 제안이 인상적”이라며 “(대연정에) 발끈하며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오히려 협량해 보인다”, “내부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열린 연정’의 필요성을 웅변하는 안희정 지사가 훨씬 책임 있는 정치인답다.”고 말했다.

안 지사가 몇몇 이슈에서 보수적인 이미지를 보인 것은 보수색채가 강한 충남도에서 재선 도지사에 오르며 리얼미터에서 발표한 광역자치단체장 평가조사에서 9개월 연속 1위를 받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선 본선도 아닌 당내 주자를 뽑는 경선 단계에서 지지자들의 생각과 다른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낸 결과가 어떻게 드러날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길 잃은 반 전 총장의 중도 보수표를 끌어오기 위한 전략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떤 정치적인 목적보다는 안 지사의 평소 지론이 지금 시점에 터져서 그럴 뿐, 어떤 다른 목적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어쨌든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선 안 지사가 적폐청산이 당장 시급한 지금보다 어느 정도 부패세력 청산이 완료될 다음 정권에서 더 나은 카드가 될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돌아설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안 지사의 불안한 외줄타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