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주군 모시고 있는 이춘희 시장
엉뚱한 주군 모시고 있는 이춘희 시장
  • 유재근 기자
  • 승인 2016.09.02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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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단상>유재근
© 백제뉴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2항에도 나오는 이 이야기를 유력인사들은 큰 울림이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인용한다.

얼마 전 광복절에 문재인 전 대표, 성주 사드 배치 투쟁 당시에 방송인 김제동 씨, 지난 총선 직전 탈당 기자회견장에서의 유승민 의원도 이 말을 들고 나왔다.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 없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상식적인 말이지만 국민보다 권력자들에게 충성하는 현실을 비난할 때 이런 말을 쓰게 마련이다.

화려한 당선 이후 세간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던 이해찬 의원이 난데없는 ‘퇴비 갑질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자택 주변 밭에 농민이 뿌려놓은 퇴비 때문에 악취를 겪은 이 의원이 세종시 공무원들을 불러 호통을 친 뒤 해당 농민이 퇴비를 전량 수거하고서야 마무리 됐다는 게 사건의 요지다.

이 의원 스스로가 농가주택에 이주를 해놓고서 농민의 정당한 영농활동을 자신의 위력을 앞세워 못하게 했다 하여 한바탕 시끄러웠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춘희 시장이 1일 정례브리핑에서 이 사건에 대한 적절치 못한 해명을 하면서 커졌다.

이 시장은 “책임읍면동제 시행으로 조치원 읍사무소 담당자가 업무를 처음 하다 보니 초기에 관련법규를 숙지하지 못해 공백상태가 있었다”며 “의원께서 여러 날 지났는데 아무 조치가 없으면 어쩌냐 해서 부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방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민원제기로 이미 뿌린 퇴비를 전량 수거하게 된 시민의 억울함보다는 도리어 이 의원이 민원제기에도 빠른 대처를 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를 하는 반응이었다.

또한 “뒷집에 계신 분이 잠을 못잘 정도로 냄새가 심하게 났다”며 이 의원의 민원이 정당했다는 것을 부각하는데만 집중했다.

물론 정확한 사실은 밝혀져야 할 것이다. 전국의 수많은 퇴비공장들이 등급기준에 따라 퇴비를 공급하고 있고, 또 수분함량이나 부숙도 등의 까다로운 검사를 거치며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가축분으로 만든 퇴비는 냄새가 있고, 때로 그 정도가 심한 것도 있다. 특히나 한 여름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7선의 국회의원이 동네의 일에 이런 행동을 보였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보여지는 입장에서 좋아 보일 리 없다. 더군다나 담당 계통을 무시하고 ‘내가 잘 아는 힘 센 사람(부시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 사실은 어떻게든 정상적인 민원제기로 보기 힘들다. 일반 시민이 부시장에게 민원을 제기하고 부시장이 그걸 해결해준다는 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차라리 ‘양 측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며 진상을 조사하고 있다’는 정도로 가름을 하고 나중에 사실규명을 해서 이 의원, 농민, 퇴비제조사 중 누가 잘못을 해서 어떻게 처리했다고 밝히는 편이 훨씬 나았으리라 본다. 지금 이 시장의 대응은 이 의원이 언론보도로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을 피해드리게 하고자 하는 의미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시민이 주인’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시장이 정작 이런 일에 시민의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권력자의 편에 서서 발언을 한다면 시민들은 그의 진정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