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기 논란, 안 걸리면 로맨스 걸리면 사회 탓?
정용기 논란, 안 걸리면 로맨스 걸리면 사회 탓?
  • 유재근 기자
  • 승인 2016.02.02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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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근 © 백제뉴스

더불어민주당의 박수현 의원은 올 초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끄럽다’며 그동안 자신의 의원실로 접수된 민원의 90% 이상이 법을 위반할 수밖에 없거나 압력을 행사해야 하는 ‘청탁성’ 민원이었다고 고백했다. “민원인에게 해결됐다고 이야기하는 순간은 ‘아이고 내가 이 표는 안 잃었다’며 안도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국회의원이 맞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양심적이고 대의에 맞는 일만 해야하는 국회의원이지만 다음 총선에서의 공천을 위해 대통령이나 당의 입맛에 따라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것만해도 안타까운 일인데 지역구 민원인들의 청탁과 압력 앞에서 불법을 알고서도 딱 잘라 거절할 수 없는 위치에 놓여있다? 대표적인 ‘갑’의 신분으로 알려진 국회의원이지만 다음 선거 앞에선 한낱 부질없는 처지일 뿐이란 말인가.

새누리당 정용기 의원의 ‘갑질 청탁 논란’이 주말부터 여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카카오톡 메시지로 대전의 한 유명 중소기업 대표의 부탁을 받고 고교 동문선배인 병원장에게 사위와 딸의 취업 청탁을 한 정황이 언론사 카메라에 찍혔다.

정 의원은 “먼저 경위에 관계없이, 지지해 주시고 성원해 주신 주민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매우 송구하다. 자식의 부부동시 면접에 따른 역차별 등을 걱정하는 부모로부터 전화 한 통화만 해달라는 부탁을 국회의원으로서 냉정하게 끊지 못한 것은 저의 불찰"이라고 해명했다.

‘어휴, 얼마나 많은 부탁을 받았으면.. 어쩌다 걸렸어. 걸리지나 말지’ 애처로운 마음이 필자의 머리에 한 동안 맴돌았다는 걸 이내 경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국회의원에게 청탁은 만연해 있었다는 걸 너무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얼마 전 읽은 박 의원의 고백이 애잔했지만, 그게 실제상황으로 나타났다면 그건 더 이상 ‘애잔’이 아니다.

만일 정 의원이 너무 의정생활을 열심히 한 나머지 자기 지역구에 정말 능력이 출중하고 성품이 올바른 젊은 청년이 취업난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걸 알게 되어 그걸 누군가에게 추천해 직장을 얻게 했다하더라도 언론에서는 정말 일 잘하는 의원으로 보도를 해줄지언정 그때마저도 속이 꼬인 사람들은 취업청탁이니 사돈의 20촌 내라도 무슨 관계가 있겠지 그냥 순수하게 해줬을 리 없다며 따지고 들 노릇이다.

하물며 지역구민도 아닌 그냥 아는 사람의 부탁에 청탁전화? 공정한 면접이 되도록 신경 써 달라고 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식의 태연한 대응은 놀랍기만 하다. 더욱이 "우리 사회가 냉정하게 끊거나 외면하기 어려운 애타는 부탁을 주고받지 않아도 되게 더욱 행복하고 평안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도리어 사회 탓을 하는 대목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청탁이든 부탁이든조차도 할 수 없이 오롯이 자기 실력으로만 승부해야 하는 수많은 흙수저 청년들과 서민들은 울분을 토할 일이다.

물론 민원인이 그에게 부탁을 한 것까지 그의 잘못이라고 말할 순 없다. 그간의 늘 그래왔던 선배 국회의원들의 잘못된 행동이 초선인 그에게까지 ‘부탁해봄직한 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가 부탁을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역시 정용기는 청렴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우며 부탁한 자신을 반성하는 훈훈한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 거란 사실도 인정한다. 그렇다고 이번 ‘갑질 청탁 논란’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요샛말이 있다. 굳이 이름을 거론할 것도 없이 청탁 논란은 초선과 다선을 가릴 것 없이, 여야 상관없이 터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길 조짐이 없다. 별 생각 없이 부탁하고 또 받아주며 안 걸리면 로맨스, 걸리면 사회 탓을 하는 가벼운 인식은 사라져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메니페스토 운동을 하며 공약 지키기를 다짐하듯 청탁 안 받기를 다짐해야 할 시대가 오는 건 아닌지 씁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