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와 아버지의 편지
오병이어와 아버지의 편지
  • 김지철
  • 승인 2016.01.2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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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지철
© 백제뉴스

종교든 성인의 가르침이든 그 생각의 맨 밑바닥엔 ‘나눔’이 놓여있다. 예수님의 사랑도 부처님의 자비도 공자님의 인(仁)도 결국은 이웃과 더불어 나누며 살자는 것이다. 나눔이 빠진 사랑, 자비, 어짊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예수가 보여준 오병이어(五餠二魚, 한 소년이 가져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이 먹고 남았다는)의 기적을 떠올려 본다. 이 사건엔 춥고 배고픈 이들에 대한 예수의 마음 씀씀이가 잘 드러나 있다. 당시 예수를 따르던 민중들은 로마제국과 통치자인 헤롯 왕실, 제사장들의 수탈과 핍박으로 형언할 수 없는 고난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민중들의 삶을 바라보는 예수의 마음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종교적 해석을 떠나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라는 소박하고 턱없이 부족한 음식으로나마 ‘나눔’을 시도했다는 ‘상징’에 무게를 두고 싶다. 보잘 것 없는 음식이지만 서로를 배려하며 나누는 사건을 통하여, 호의호식하는 수탈 계층에겐 부끄러움과 각성을, 가난한 이들에게는 궁핍한 가운데에도 더불어 사는 의미를 던져준 삶의 은유라 생각한다.

나는 ‘당신 교육철학이 뭐요?’ 하고 물을 때마다 기꺼이 ‘나눔철학’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나눔이 화두가 된 요즘 생각이 아니라 교직에 입문하기 전부터 초지일관 걸어온 내 삶의 궤적과 함께한 소신이자 신념이었다. 고교평준화도 교육혁신도 결국엔 나눔을 기저로 상생하며 상승하자는 것이다. 일부에게만 득이 되는 교육 행위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불행한 사회일수록 강자가 많은 것을 독식한다. 소수가 행복하고 다수가 불행한 사회는 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 민주주의 근저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공리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공리라는 이름으로 다수를 표방하여 소수를 희생시킬 때, 즉 공존이 무시될 때 ‘넘쳐흐르는 풍요 속에 있으면서도 굶어 죽고 있다.’는 경고등이 여기저기서 깜빡거리는 것이다.

무한경쟁을 통하여 승자가 독식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대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그 어떤 시대정신이 정립되더라도 초석엔 나눔이 놓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눔이 건강하게 이행되는 사회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재산에 따른 수저계급론이 SNS를 떠돌고 있는 요즘,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먼 나라 이야기지만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딸이 현재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 너를 사랑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 짊어져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라며 초보 부모가 된 주커버그는 보유지분 99%, 52조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이 벌어들인 막대한 부를 이용하여 견고하고 폐쇄적인 성을 쌓아 물려주는 것으로는 딸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는 딸의 행복한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로 불평등을 꼽았다. 그야말로 공존을 강조하는 미래지향적 ‘통 큰 나눔’이다. 지구상의 모든 이들을 연결하겠다는 페이스북 창업정신과도 통한다.

2016년 새해, 오병이어의 기적과 아버지의 편지, ‘인간은 주는 가운데 풍요로워지나 탐욕은 쌓는 가운데 빈곤해진다’는 페르시아 속담을 곱씹어본다.

/충남도교육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