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기자 칼럼>선거구 재획정, 뒷북치는 정치인
<객원기자 칼럼>선거구 재획정, 뒷북치는 정치인
  • 백제뉴스
  • 승인 2014.11.0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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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재 근

대학교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대학 평가가 한창이었고, 교육부와 학교 측은 경쟁력 강화와 시대변화에 부응한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취업률을 바탕으로 평가의 폭이 제한되면서 인문계 학과들이 그 표적이 됐고, 일부에서는 취업률로 표현할 수 없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부르짖었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에서 최대선거구와 최소선거구의 인구편차가 3대 1에 달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이에 해당하는 지역들이 요동치고 있다. 이를 내년 말까지 2대 1 이내로 줄이게 된다면 기존의 선거구는 크게 바뀌게 된다.

충청지역에서는 그간의 충청권 홀대론을 씻어낼 수 있는 기회라 여기고 있다. 광주와 울산에 비해 인구가 많지만 광주보다 적고 울산과는 같은 의석수를 가진 대전은 환호하고 있고, 충청권에서도 호남, 영남과의 형평성을 따지며 천안 등지에서 증설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공주의 사정은 다르다. 헌재의 판결대로 의석수를 재획정했을 때 하한 인구수인 13만 8천여 명에 공주(약 11만 5천명)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공주의 주변도시인 부여·청양, 세종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국회의원 정족수가 늘거나 비례대표가 줄지 않는 한 충청권이 살자면 공주는 이들과 함께 희생당해야 할 입장이다.

공주가 기존의 연기군과 함께 선거구를 이루었으나 지금은 세종시가 특별자치시의 위상을 입었다는 점에서 세종시와의 통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면 공주·부여·청양을 한 울타리로 묶거나 공주·부여를 하나로 묶고 청양을 홍성·예산이나 보령·서천과 묶는 방식이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다는 상황이 우습긴 하지만 기존의 관례대로 여전히 국회의원들이 선거구 획정 논의를 한다면 공주의 선거구 통합이 불가피하다는 전제 하에 청양 출신의 이완구 원내대표가 차기 총선에 텃밭으로 다시 출마한다는 가정을 더해보자.

과연 이완구 대표는 어떤 판단을 할까? 공주와 부여를 묶고 청양을 홍성·예산에 붙이자니 국회 예결위원장인 같은 당의 홍문표 의원이 있고, 청양을 보령·서천에 더하자니 본인이 도지사 시절 정무부지사를 했던 김태흠 의원이 있다. 공주·부여·청양을 세트로 잡는다면 야당의 초선의원과 붙으면 된다.

이런 불행한 시나리오라면 공주는 지역 출신 국회의원을 단번에 잃을지 모른다.

박수현 의원은 ‘농촌지역은 지역의 대표성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말로 헌재의 판단과 상관없이 지역의 의원자리를 유지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공주라는 작지 않은 도시가 헌재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인구수조차 맞추지 못할 만큼 인구가 감소할 동안 무슨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농촌지역의 대표성’이란 말은 ‘인문학의 중요성’이란 말과 그 궤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수치로 나타나는 정확한 근거는 감정의 호소들을 다 밀어낸다. 대학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보다는 취업을 잘 시켜줘야 인정받는 세상이 된 것처럼, 국회의원도 이제 자기자리를 지키려면 대표성 따위의 말보다는 그 지역을 부흥시켜 자신의 지역구는 자기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박수 받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본지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