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루 다래
머루 다래
  • 육복수/시인
  • 승인 2008.06.2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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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구를 보관하던 창고를 헐어내고 원두막을 짓는 바람에, 똥오줌 냄새를 풍기면서도 잘 커가던 머루와 다래 녀석을 어쩔 수 없이 보내게 되었다.

어떡하나, 사람이 좀 더 누리면서 살고자 지은 원두막인데, 개들의 똥오줌 냄새가 풍기는 바로 옆 원두막에서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귀엽고 예뻐하던 예전을 생각하면 못 할 짓이었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놈들은 또 종자가 큰 놈들이라 먹을거리와 배설물이 장난이 아니어서, 아내와 아들놈과 상의 끝에 보내기는 했는데, 보름 만에 원두막이 완성되고, 날 좋던 휴일 원두막에 앉아서 완성주 겸해서 술을 마시는데 눈이 자꾸만 머루와 다래 녀석이 살던 자리로 가는 것 있지.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날 밤 아내는 심각하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그 놈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고, 원두막도 원두막이지만 영판 마음이 좋지를 않다고.

그러면 이왕 보낸 놈을 어떡하냐고 내가 짜증을 냈더니, 똥오줌 냄새가 좀 나더라도 그 자리에 다른 녀석들이라도 구해 와서 키우자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장날 발바리 한 마리를 사가지고 와서는, 예전에 녀석들이 살던 자리에 집을 마련해 주고 이름을 다래라고 지었다.

헌데 이 발바리 녀석이 도통 밥을 먹지 않을 뿐더러 사람을 설설 피하면서 따르지를 않는 것이다.

개를 키워봐서 좋아하는 먹이와 내가 할 수 있는 짓거리를 총 동원을 해서 정을 붙이려 해도 도대체 반응이 없어서, 에이 냅둬버려 하는 마음으로 지내다가 그것도 생명인지라 한 마리가 더 있으면 좀 나아질까 하고, 커지는 종자로 한 마리를 더 구해 와서 이름을 머루라고 짓고는 같이 지내게 했더니, 다래 녀석의 행동이 완전히 바뀌어서 지금은 서로서로 더 이쁘게 보이려고 시기와 질투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머루 다래 녀석들에게 푹 빠져서 오늘도 퇴근하면서 소시진가 뭔가를 사가지고 가방에 우겨 넣고는 어제는 머루가 어떻게 했고 다래가 어쩌고 신이 나서 난리다.

결국은 뭔가. 원두막을 지었을 때나 없었을 때나 똑 같은 것 아닌가.

개의 똥오줌 냄새 때문에 원조 머루와 다래를 보내놓고는, 다시 또 다른 머루와 다래를 데려와서 원두막 옆에서 키우는 이 짓거리가 우리의 인생살이인가…. 그런가, 어쩐가.

- 어떤 인연 -

인연은 산맥을 못 넘지

아득한 어느 곳
물길 끓는 소리

우리 살아서 저 산을
못 넘었으므로
죽어서도 못 넘는다
산기슭에 앉아
새나 띄우고
구름이나 부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