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선생님 교수님
스승님 선생님 교수님
  • 이필영 공주대 교수
  • 승인 2008.05.2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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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先生)이란 말은 의미상 먼저 태어난 사람이란 뜻으로 요즘은 단순히 상대방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우리 고유의 토박이말은 스승입니다. …”

몇 해 전 서울에 ㄷ초등학교에서 보낸 가정통신문 일부분이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선생님을 스승님으로 바꾸어 부르기로 결정했다는 거다. 그러니 학부모들이 각 가정에서 그렇게 부르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스승님으로 불러줘야 참스승이 되는 건가! 학교가 바로 서는 건가!

스승이란 뭔가. 언제 그 낱말은 태어났는가. 교육기관의 탄생과 더불어 태어났으리라. 삼국시대부터 교육기관은 태어났다. 고구려 때는 태학(太學)과 경당(?堂), 백제와 신라에는 국학(國學)이 그것이다. 당시에는 불교가 국교다. 중국 유학을 다녀온 스님들이 최고의 스승이리라. 당연히 스승의 어원은 ‘스님’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선생의 뜻인 한자 ‘師’가 중국발음으로 ‘스’인 것만 봐도 그러하다.

말도 고향이 있고 생명이 있다. 그리고 감정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전만 하더라도 ‘교수님’이란 부름말은 없었다. 대학에서 그냥 선생님으로 불렀다. 그런데 요즈음은 교수님으로 부른다. 왜, 지난날에는 선생님으로 불렀는데 오늘날은 교수님이라 부르는가? 시대가 변했다고 부름말까지도 변해야 하는가. 오늘날 대학엔 ‘교수는 있되 선생은 없다’는 뜻인가.

‘교수님!’ 얼마나 거북한 부름말인가. 왠지 직업 냄새가 물씬 풍긴다. ‘선생님!’ 얼마나 정감어린 말인가! 참된 삶을 이끌어주시는 분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좋은 부름말을 제쳐두고 교수님으로 부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지식만 팔아먹는 직업인으로 들린다. 사표(師表)가 되기에는 어딘가 어설픈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느껴지는 어감은 잘못일까.

교수와 선생 차이는 무언가. ‘우리말 큰사전’에서는 교수를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원’이라 풀이한다. 교사는 ‘초·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원’으로 풀이한다. 교수나 교사나 뜻이 같다. 단지 직업 구분일 뿐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님이라 하지 않는다. 그냥 선생님으로 부른다. 그런데 대학 선생은 애써 교수님으로 부른다. 직업에 ‘님’자를 붙여도 되는 건가? 굳이 그렇게 불러야 어법에 맞는 건가?

그렇다면 상업이 직업인 사람을 만날 땐 ‘상업님’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을 호칭할 때 ‘농업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국토방위에 책임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는 ‘군인님’이라 불러야 하는가. 병원에 진찰받으러 갔을 땐 ‘의사님’이라 해야 하나. 왠지 어색하다. 부자연스럽다. 직업 명칭에 ‘님’자를 붙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교수님!’ 얼마나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가? 두드러기가 나는 듯하다. 송충이가 등골을 타고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든다. 뭐라고? 존칭 뜻이 담긴 부름말이라고~!

어버이를 부를 때 ‘어버이님!’이라 부른다면 어떤가? 어색하지 아니한가! 순수한 우리말 엄마 아빠가 있다. 자식은 어머니를 엄마라 부른다. 그래야 자연스럽다. ‘어머님’하고 부르면 좀 어색하다. 아버지보다 ‘아버님’이라 하면 왠지 의붓아버지인 것처럼 들린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부를 땐 ‘어머님’이라 부른다. 그 며느리가 친정어머니를 뵐 때는 그냥 ‘엄마’라고 부르지 않던가! 어머님보다는 어머니가, 어머니보다는 엄마가 더 정감어린 부름말이다. 마찬가지로 교수님보다는 선생님이 더 다정다감하게 들린다.

말은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입으로 나타내는 소리다. 생각이 바르면 말이 바르고, 생각이 그르면 말도 그르다. 생각이 참되면 참말이 나오고, 그것이 삐뚤면 말도 삐뚤다. 말은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사회가 썩을 때는 징후가 있다. 먼저 말부터 썩는다. 인터넷에 올려진 글을 보라. 얼마나 썩고 오염되었나. 부름말 하나라도 바르게 써야 한다.

엄마로 아버지로 불러야 한다. 그래야 포근한 엄마, 자상한 아버지가 곁에 계신 듯하다. 마찬가지다. 교수님보다 선생님이라 불러야 한다. 그래야 자상한 스승이 곁에 계신 듯한 게 아닌가! 그렇다고 ‘스승님’이라고 불러보라. 얼마나 쑥스러운가. 극존칭은 비위 상하기 때문이다. ‘어버이님’으로 부르는 격이다.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바른 스승의 길을 걷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인터넷에 떠다니는 스승과 선생과 교수의 풀이가 쓴웃음을 짓게 한다. “스승은 인생에 영향을 주지만, 선생은 학교 안에만 책임지고, 교사는 자기 교실만 신경 쓰고, 교수는 전공에만 눈을 크게 뜬다.”라나~! 이래서는 아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