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밤, 밭에서
비오는 밤, 밭에서
  • 육복수/시인
  • 승인 2008.05.2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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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가뭄에 가슴이 바작바작 탔었는데 연이틀 힘겨운 비가 내렸다. 갓 심어놓은 모종들에 길게 호스를 연결해서 물을 뿌려대며 우선의 갈증을 가시게 해도, 오그라들며 시들어가는 것들을 어찌할 수 없어 애간장을 태우고 있던 터에, 바람 심하게 몰고 오면서 흩뿌리듯 내리는 비라도 그저 고맙기만 했다.

설레고 좋아서 캄캄한 밤중에 겨울 파카를 꺼내 입고 모자를 눌러 쓰고, 후레쉬를 들고서 밭으로 가서는 고추, 감자, 고구마, 파, 상추, 토란 등등, 어린놈들을 살펴봤다.

그 얼마 되지도 않은 사이에 비에 흠뻑 젖어서 줄기와 잎들이 번들거리며 어둠 속에서도 싱싱해 보였다. 땅 속에 뿌리가 묻혔으면 얼마나 묻혔고 뿌리가 내렸으면 얼마나 내렸을까만, 이 사나운 바람비에 흔들리면서도 스스로의 생명력에 모든 것을 의지한 채, 살아내려는 아등거림이 경이롭고 감탄스러워, 몸이 비에 젖는지도 모르고 밤늦도록 후레쉬를 비추며 밭을 오가며 즐거웠다.

사십년 전의 일이다. 강가 유원지로 동네 친구들과 물놀이를 갔다가 누군가 물속에 버려놓은 병조각에 발바닥이 한 뼘을 찢겨서 피를 흘리며 리어카에 실려, 일본식 목조건물로 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커튼 저 쪽에서 의사와 어머니의 대화를 지금도 기억한다. ‘좀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잘 못되면 장애가 될 수도 있어요’라는 말. 그 후로 내 발을 간호하면서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극하게 간호만 하셨다.

간혹 간혹 깊은 밤, 발바닥의 통증에 깨어나 눈을 뜨면 윗목에 누워 계시다가, 내 신음소리에 놀라 다가오며 미처 감추지 못한 어머니의 눈물을 나는 보곤 했었지만, 그 때는 그것이 무언지 몰랐다. 의료시설도 시원치 않은 시절이었고 집안의 경제사정도 변변치 않아, 내 발의 완치는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오래 간 것 같다.

어머니가 입으로 상처를 빨아 고름을 빼내곤 했으니까. 내가 완치되고 난, 이 년 후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오월이다 오월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무리 건강하고, 우리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우리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들이고, 우리가 아무리 출세를 했어도, 그것은 내가 잘나고 내 머리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눈물 때문이다, 정성 때문이다, 누구의 정성이고 누구의 눈물인가?

궂은 날 밤, 밭고랑을 나가보니 알겠더라.

 

띠오오옹

올 해는
석탄일에 절에도
못 갔네요
먹고 살기 바쁜
이 시절에는
몸을 나투시어
부처님께서
저의 집에 좀 와주시면
안됩니까
요즘 아이들은 마음에
안 들면
찌질이라고 하던데..... 띠오오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