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노마드, 카지노 자본주의, 그리고 광우병
호모 노마드, 카지노 자본주의, 그리고 광우병
  • 강수돌(고려대 교수, 조치원 마을 이장)
  • 승인 2008.05.1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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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출신 프랑스 사상가이자 경제학자인 자크 아탈리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노마드’의 역사다. 그는 인간을 ‘호모 노마드’라 한다.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란 원래 ‘방목지를 함께 나눈다’라는 말(노모스)에서 왔다 한다.

다시 말해, 약 5백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 불리는 유인원이 동남 아프리카의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온 이후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유목민의 역사였는데 그 와중에 간헐적으로 정착민의 역사가 전개되었다.

압축하자면 인류 역사는 유목민의 역사와 정착민의 역사가 상호 교차하면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동반 발전하기도 하는 역사다.

따지고 보면 채집 경제에서 농경 경제로 전환된 약 1만 년 전부터 인류는 정착민의 역사를 발달시켰지만 그렇다고 늘 정착한 건 아니다. 정착민들도 부단히 고향을 떠나 살아야 했고 지금도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자기 고향에 머물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국적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현재 고국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들이 65억 인구 중 약 10% 가까운 5억 이상이다. 아탈리 박사는 향후 50년 이내에 유목민으로 살아야 하는 이들이 지구 인구의 절반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한다.

갈수록 삶의 불안정성, 변화무쌍성, 다양성이 커질 것이다.

아탈리 박사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우리가 여태껏 가진 정착민적 생활 태도에 집착하지 말고 정착민의 장점과 유목민의 장점을 결합시켜 새로운 사회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 정착민의 장점은 소속감, 장기적 관계, 자연에 대한 애착, 뿌리 의식 등이다.

한편, 유목민의 장점은 용기, 자유, 고집, 환대, 관용, 집착으로부터의 탈피 등이다. 결국 우리는 지구 차원에서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하며, 그 주체는 정착민의 장점과 유목민의 장점을 결합한 ‘트랜스휴먼’이다.

이제 참다운 인간의 모습을 되찾아 참되게 사는 일 자체가 ‘직업’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소박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메시지다.

아탈리 박사의 기준으로 보면 현 한국 사회는 너무나 척박하다. 갈수록 노동시장에서 종신고용이나 연공서열주의가 붕괴한다.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2/3를 차지하고, 전체 노동자는 갈수록 높은 노동강도, 장시간 노동, 노동중독의 덫에 빠지며, 노마드적인 세계 경제의 흐름 속에서 삶의 토대인 농어촌이 급격히 붕괴하고 있다.

대도시 역엔 노숙자가 몰린다. 따스한 사랑을 나눌 가정은 더 이상 ‘보금자리’가 아니라 떠돌이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변한다.

돈벌이에 미친 사람들로 말미암아 불쌍하게도 소가 미쳐 유통된다. 미친 소는 또 사람 건강을 위협한다. 광우병이 생기는 것도 결국 ‘광인병’ 때문이다. 우리 살림살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야 할 실물 경제의 흐름이 갈수록 노동자와 소비자를 중독 체계 속으로 편입시키고, 갈수록 실물 경제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투기성 자본을 강화시켜 ‘먹튀’ 자본주의 내지 카지노 자본주의가 커진다. 이 맥락에서 ‘유목주의는 해방주의’가 아니라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라는 반론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조건에서 과연 아탈리 박사가 기대하는 ‘트랜스휴먼’이 나올 것이며 그들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지구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현실은 너무나 암담하다. 나중엔 정착할 땅은 물론 유목할 땅마저 사라질 판이다.

더 늦기 전에 정착민의 역사가 낳은 장점과 유목민의 역사가 낳은 장점을 결합해야 한다. 그런 열정만 있다면, 암담한 현실도 희망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다. 미래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