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춘향이를 수출(?)하자
우리의 춘향이를 수출(?)하자
  • 전병철
  • 승인 2013.07.0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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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철의 재밌는 기념일 이야기><3>
전 병 철

단순히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로 알고 있는 칠월칠석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는 막상 섹스의 한 장면을 노래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소를 끄는 일과 베를 짜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견우는 소를 끄는 건장한 총각을 가리키는 말이며, 직녀는 베를 짜는 건실한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견우와 직녀는 고유 명사라기보다 일 잘하고 착실한 농촌 총각과 처녀를 각각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보통 명사에 해당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일한 탓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견우와 직녀는 이제 사랑에 빠지자 정신없이 사랑에 몰두하였다. 남들이 시샘할 정도로 이들의 사랑은 지칠 줄도 그칠 줄도 몰랐다. 예전만큼 일은 하지 않고 사랑에 전념하다 보니 옥황상제의 진노를 사게 되어 결국 이들은 강제로 이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 년에 단 한 번밖에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도 견우와 직녀는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였고, 일 년 가운데 단 한 번 만나는 칠월칠석날만 기다리며 살았다. 그리고 칠월칠석날 견우와 직녀는 오작교에서 만나 일 년에 오로지 단 한 번뿐인 사랑을 불태우게 되는데, 이날은 꼭 비가 내린다고 한다.

이런 칠월칠석 이야기에는 은유적 표현으로 숨어 있는 뜻이 있다. 오작교(烏鵲橋)는 단순히 보면 ‘검은 까치와 까마귀들이 만든 다리’를 가리킨다. 그러나 살펴보면 까막까치들이 양쪽에서 달려와 놓은 다리란 ‘사람의 양쪽 다리 사이 검은 털이 나 있는 지역’을 상징한다. 또 견우와 직녀가 그 다리 위에서 만나는 것은 ‘남녀의 성기가 결합’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비는 단순하게 견우와 직녀가 ‘만나 반가워서 흘리는 눈물, 또는 이별을 아쉬워하며 흘리는 눈물’이나 ‘애틋한 사연을 슬퍼하는 까치들의 눈물’, 또는 ‘하늘이 감동하여 내리는 비’ 등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기실 ‘남자와 여자가 성교하는 도중에 흘러내리는 체액’, 이른바 ‘남자의 정액과 여자의 질액’을 상징하기도 한다.

따라서 거방지게(푸짐하게) 내리는 비는 남자에게나 여자에게 모두 충분한 성교를 마친 뒤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여 칠월칠석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청춘남녀가 만나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한바탕 거방지게 성교를 치르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나 성교는 불륜이나 상품화된 것이 아니라,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맺어진 결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견우와 직녀의 사랑은 모든 면에서 아름답다. 변함없는 사랑이 그렇고,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그렇고, 야한 점에서도 그렇다. 야할 때는 누구보다도 야하고, 야하되 지저분하지 않고, 추하지도 않으며, 퇴폐적이지 않고, 비도덕적이지도 않다. 이런 사랑은 당당한 사랑이요, 내세울 만한 사랑일 것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TV나 영화, 각종 책을 통해 만나는 서양인들의 사랑을 보라. 친구 부인과도 아무 거리낌 없이, 그것도 사랑도 없이 하는 섹스, 돈만 주면 쉽게 살 수 있는 성, 그런 비도덕적이고 불륜적이며 상품화된 사랑에 비해 견우와 직녀의 사랑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아까울 만큼 순결하고 높은, 그런 지고지순한 사랑이다. 서양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야하면서도 건강한 사랑! 바로 이것이 우리 민족의 사랑이요, 앞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사랑일 것이다.

마릴린 먼로와 성춘향. 마릴린 먼로는 서양의 ‘섹스 심벌’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 사랑은 상업적인 것이었다. 우리의 성춘향은 마릴린 먼로보다도 야하면서도 결코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랑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홍콩의 ‘Madame Tussauds’ 밀랍 인형 박물관에 있는 마릴린 먼로 모습이고, 오른쪽 성춘향 영정은 전북 남원 광한루의 춘향 사당에 봉안된 것으로 이당 김은호가 그린 것이다.

견우와 직녀의 사랑만이 아니다. 춘향이를 보라. 나이도 어린것이 이몽룡과 처음 만난 날 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을 텐데 그들이 벌이는 사랑의 장면은 야하기도 하지만 그 정도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러나 사또 변학도가 요즘 얘기로 백지수표에 아파트는 물론 콘도까지 준다 해도, 성춘향(成春香)은 오로지 ‘내 사랑, 이몽룡’뿐이라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절한다. 야할 땐 누구보다도 야하지만,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랑을 춘향이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본래 우리 민족은 섹스에 무딘 민족이 아니라 한다. 고려 속요(俗謠) 가운데에는 남녀 간의 애정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노래한 작품이 많아 이것에 대해 조선 한학자들은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 하여 업신여겼다. 또 조선시대에 들어서 등장했다고 여겨지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만 살펴봐도 그렇다. ‘남녀가 일곱 살이 되면 서로 같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라고 하니 어려서부터 참 예의범절이 바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다. 오히려 어려서부터 남녀가 아주 가깝게 지냈던 것이다. 어린것들이 문란할 정도로 가까이 지냈기에 일곱 살부터 남녀가 같이 앉아 있지 못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어른들이 자주 부르던 민요 ‘군밤타령’도 알고 보면 야한 노래라고 한다. 이 노래를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면, 군밤타령 또한 성교 장면을 표현한 노래로 볼 수 있다. ‘연평바다’, ‘봄바람’, ‘생율밤’, ‘눈’ 등이 바로 성기나 성교와 관계된 은유적 표현이다. 군밤타령은 견우직녀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남녀의 성교 과정을 표현한 노래라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섹스에 강하고 그것을 즐길 줄 아는 민족이었다는 사실을 여러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만, 단순히 동물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이 있다는 데서 서양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서양처럼 돈으로 사고파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죽어도 변할 수 없는 그런 사랑이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서양 문화에 휩쓸려 혼마저 뺏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 서양의 저질적인 섹스를 수입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건강한 사랑을 수출해야 할 것이다.

야하다는 서양의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를 수입할 것이 아니라 마릴린 먼로보다 더 야하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랑을 지닌 우리의 ‘성춘향’을 수출해야 할 것이다. ‘밸런타인데이’를 수입할 것이 아니라 ‘칠월칠석’을 수출해야 할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서양 사람들이 ‘칠월칠석’을 제대로 알기만 한다면 그들은 우리보다 더 ‘칠월칠석’을 좋아할 것이다. 어쩌면 칠월칠석에 환장할지도 모른다.

칠월칠석은 숫자적으로도 좋은 날이다. 일반적으로 홀수는 좋은 수요, 짝수는 나쁜 수로 말해지고 있다. 좋은 홀수가 겹치는 날, 즉 1월 1일 설날, 3월 3일 삼짇날, 5월 5일 단오, 9월 9일 중양절은 모두 다 좋은 날로,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에 해당한다.

결국, 칠월칠석은 야하면서도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랑을 나누는 날인 것은 물론 수리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좋은 날이요, 우리 고유의 풍속으로도 매우 뜻깊은 날이다. 이렇게 좋은 칠월칠석이 왜 푸대접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