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에서 배우는 만족하는 삶의 이치
신호등에서 배우는 만족하는 삶의 이치
  • 이달우 공주대(사범대학 교육학과)교수
  • 승인 2008.04.1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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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쉬운 일도 만나고 어려운 일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운 일만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일이 쉬우면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마치 없었던 일처럼 되고, 어려우면 기억이 강하게 남아 왜 어려운 일만 있는 것인지 불만을 토로하게 마련이다.
 
불평하는 삶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재미가 없다. 그러므로 만족한 삶을 영위하려면 불만이 없어야 한다. 우리가 없애야 할 불만은 인식 속에 존재할 뿐 그 고유한 실체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 인식의 경계를 불평에서 만족의 세계로 바꾸게 되면, 삶의 재미가 부쩍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다.
 
불만족한 삶에 길들은 사람들은 흔히 세상 일이 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안 되거나 못할 것은 없다. 어려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선철(先哲)들이 무물불리(無物不理)를 말하고 즉물궁리(卽物窮理)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치를 깨우치게 되면, 불만족하는 삶에서 만족하는 삶으로 인식을 전환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다.
 
무물불리(無物不理)는 무엇을 이르는 것인가? 이 세상 어떤 사물이든지 이치가 없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삼라만상이 이치에 따라 돌아간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거나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삼라만상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으려면, 그 이치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이치를 내 안으로 가져오기 위해 그 사물에게로 다가가야 한다. 이것이 즉물(卽物)이다.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캐는 것은 궁리(窮理)이다. 그러므로 즉물궁리(卽物窮理)는 우리가 사물에게 다가가 그 이치를 따져보는 것이다.
 
사물에 즉(卽)하여 그 이치를 캐묻고 따져보면 풀지 못할 어려운 일은 없다. 이런 이치의 일단(一端)에 대해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자동차를 운행하다 보면 신호등을 자주 만나게 된다. 급한 일이 있을 때, 신호등이 시간을 더 걸리게 하는가 싶어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신호등이 결코 우리의 시간을 빼앗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언젠가 무척 바쁠 때 조바심을 하며 신호등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신호등의 원리”가 가지고 있는 이치를 보았다. 흔히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로 바쁜데 돌아가라 하고, 또 그렇게 한다면 어리석다는 평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좀더 다른 의미를 전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것은 실제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으로 조바심을 재워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대개 푸른 신호등을 반기고 좋아하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붉은 신호등을 좋아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조급한 마음을 조절해야 한다는 뜻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실제적으로도 꽤 합리적인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붉은 신호등이면 곧 푸른 신호등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운전중 바로 앞의 신호등 뿐만 아니라 그 다음의 신호등까지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리하여 신호등에 짜증을 내기보다는 오히려 신호등을 즐기며 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 만족스러운 운전이 되는 것이다. 삶이 여유롭고 풍요롭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접근하고 있는 바로 앞의 네거리에 붉은 신호등이 들어와 있으면 기분이 좋다. 조금은 억지 같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바뀌기 직전의 푸른 신호등보다는 한참 전에 들어와 있는 붉은 신호등이 바쁜 나의 갈길을 먼저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소하고 흔한 신호등에서도 만족한 삶에 도움이 되는 이치와 지혜를 얻을 수 있으니, 나 스스로 대견하여 기분이 더욱 흐뭇하다. 만족한 삶이라고 뭐 특별한 것이 따로 있겠는가? 이치가 그러하니 그저 이치대로 살면 그 뿐 또 무엇이 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