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2만 달러의 허상과 실상
소득 2만 달러의 허상과 실상
  • 이필영 공주대 교수
  • 승인 2008.04.0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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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선진국일까? 후진국일까?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GNI)이 2만$을 넘어섰다. 세계은행 기준(2005)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0,726$ 이상이면 고소득 국가로 분류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경쟁력보고서》에서도 17,000$ 이상이면 고소득 국가로 간주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대다수 국민은 아직도 우리나라가 지지리도 궁상떠는 후진국으로 여긴다.

경쟁력을 가늠하는 여러 지표에서도 세계에서 우리나라는 상위권이다. 고속인터넷가입자수 1위, 대학진학률 1위, 조선수주액 1위, 외환보유액 4위, 무역규모 12위에 자리한다. 세계인의 축전 올림픽과 월드컵도 열었다. 1979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1천$에서 2007년에 2만$에 달했다. 한 세대 만에 무려 20배에 해당하는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보릿고개를 잊은 지 오래다. 아니, 이젠 넘치고 부풀어서 문제다. 그런데도 국민은 여전히 후진국으로 느낀다.

왜, 그런 걸까? 국민소득에 대한 허상과 실상을 모르기 때문이다. 국민소득은 물가상승도 끌어올린다. 환율도 영향을 미친다. 가구당 4000만 원에 가까운 빚은 제외다. 분배문제도 도외시된다. 국민의 복리수준이나 윤리·문화수준은 반영하지 못한다. 측정오차도 있다. 더 큰 허상은 통계 숫자의 함정에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평균이다. 평균은 어떤 집단의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대표값이다. 최근 이목이 집중된 자료로부터 평균이 갖는 함정을 짚어 보자.

18대 총선에 나서는 후보자들 재산 정도는 어떠한가? 245개 지역구에 등록한 한나라당 후보자들의 재산은 물경 평균 178억 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자들이다. 상식적으로도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 한나라당에서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가뜩이나 ‘부자당’이니 ‘차떼기당’이니 손가락질 받는데 누명 벗을 길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궁여지책으로 최대 부자인 정몽준 후보자의 재산 규모 3조6000억 원을 제외하고 발표했다. 30억4000만 원이라고…. 꼬리를 감춘다. 두 번째로 많은 김호연 후보자의 1437억8000만 원도 평균값을 끌어 올리는 데 한 몫 톡톡히 했다.

이렇게 평균은 매우 큰 값이나 아주 작은 값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1인당 국민소득도 마찬가지다. 10%에 해당하는 부유층 소득이 평균값을 한층 끌어올린다. 실제 대다수 국민은 1만$ 안팎에서 사는 데 평균 소득은 훨씬 높게 나타난다. 실제 체감 소득수준과 명목상 통계지표에는 엄청난 괴리가 숨어 있다. 이러한 괴리를 국민은 알 리 없다. 집권당에서는 이를 교묘히 활용하기도 한다.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말이다.

그러니 많은 국민은 평균이 갖는 허상에 사로잡힌다. 통계의 함정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고소득 수준인 줄 알고 거품에 들뜨기도 한다. 평균 수준에 못 미치는 저소득계층에선 근로의욕이 없어지기도 한다. 빈부격차로 계층간 위화감도 생긴다.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반목과 질시가 싹트기도 한다.

국민이 실제 느끼는 ‘삶의 풍요’는 평균 소득이 아니다. 국민소득 크기가 선진국 후진국의 잣대는 결코 아니다. 내 집 마련에 8년이나 걸린다. 사교육비에 허리가 휜다. 강남 수십억 원 집값에 주눅 든다. 출퇴근이 교통지옥이다. 법과 질서는 뭉개진다. 윤리·도덕은 땅에 떨어졌다. 삼풍백화점도 주저앉고, 성수대교도 동강나고, 국보1호 숭례문도 화마에 사라졌다. 국민 자존심마저 나락에 떨어졌다. 파렴치범까지 벌건 대낮에 활개 친다.

국민은 소득수준보다 삶에서 부딪치는 소비지출 품목, 문화의식 수준, 안전상태 정도에 더 예민한 충격을 받는다. 국민소득 2만$에 달했는데도 후진국으로 느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도라는 나라를 보라. 소득수준이 우리나라의 20분의 1도 채 안되는 800$ 수준이다. 그런데도 대부분 인도인들은 자기 나라를 1등국으로 여긴다. 철학, 종교, 수학, IT, 요가 부문에서 단연 선진국이라 자긍심이 대단하다.

평균은 참모습을 호도하기도 한다. 전쟁 중에 있던 일이다. 병사들을 이끌고 적진을 향해 진격하는 장수가 위기에 봉착했다. 눈앞에 강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장수는 참모에게 강물 깊이를 측량케 한다. 수심은 평균 1m40cm라고 참모는 보고를 올린다. 이윽고 장수는 도강할 것을 명령한다. 병사들 평균 키가 1m65cm이므로 걸어서도 강을 너끈히 건널 수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일을 어쩌나~! 병사들은 모두 물귀신의 밥이 되었으니 말이다. 강 가운데 수심은 병사들의 키보다 훨씬 깊은 것이다. 평균 수심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법.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평균소득도 이와 같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