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장이 무너진다
억장이 무너진다
  • 공주대 이필영 교수
  • 승인 2008.03.0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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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해 친척의 권유로 구입했다.” “부부교수 25년에 30억이면 양반.” 새 정부 장관 후보자들의 일갈이다. “부자는 서민 정책을 생각 안 하느냐!” “호텔 된장찌개와 시장의 된장찌개가 다른데, 호텔 된장찌개가 비싼 것을 시기하는 것보다 시장의 된장찌개 가격이 올라갈 수 있게 해야 한다.” 한 보수 시민단체에서 내뱉은 말이다. ‘귀족내각’ ‘부자장관’이라고 질타하는 서민의 분통에 대응한 말이다. 어이가 없다. 억장이 무너진다. “국민을 잘 섬기겠습니다”라는 흘림체 글씨가 홀로 나부낀다.

새 정부 출범한지 이틀 만에 장관 후보자 세 명이나 사퇴했다. 아니, 낙마한 거다. 새 내각 후보자 15명 평균 재산은 물경 40억원이다. 근로자 가구 평균 2억4천만원에 비하면 상상을 초월한다. 가구주 2%만이 종부세 대상인데 장관 후보자의 80%가 대상이다. 모 장관 후보자는 골프장회원권만 무려 23억5천만원이란다. 서민들은 상상도 안 되는 금액이다. 병역 면제율은 또 어떠한가. 지난 30년 간 국민의 병역 면제율은 6.4%인데, 장관 후보자들은 38.5%나 된다. 부동산이 46군데나 있는 후보자도 있다. 물론 재산이 많다고 장관으로 부적합한 것은 아니다. 정상적 부의 축재라면 무슨 문제 있으랴. 헌데 대부분이 공직자들이다. 사업가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다채로운 의혹이 꼬리를 문다. 한나라당조차 ‘의혹백화점’이라 꼬집는다.

지난해 9월 초 세계 3대 거부 중 하나인 워렌 버핏 집에 도둑이 들었다. 가짜 권총을 든 좀도둑이었는데 범행 직전 발각돼 달아났다. 그러자 세간의 관심은 버핏의 집에 쏠렸다. 기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취재를 가서는 깜짝 놀랐다. 그의 집은 대문도 울타리도 없는 평범한 중산층 집이었다. 30년 전 구입해 살고 있다. 집 가격은 고작 71만 달러, 우리 돈으로 6억6천만원 정도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평균값(10억4천만 원)에도 훨씬 못 미친다.

지난 한 해 거래된 아파트 중에 최대 웃돈은 물경 20억원이다. 서울 삼성동에 롯데캐슬프리미어 아파트 238㎡(72평)는 분양가가 14억4천만원인데, 35억 원에 팔렸다. 웃돈만 무려 20억원이 붙은 거다. 어찌 그뿐인가. 부산 해운대 아이파크 펜트하우스 423㎡(128평)는 분양가가 57억원이라나. 평당 4천500만원으로 한 해 보유세만 1억2천만원이다. 서울 강남에 50평 아파트는 평균 20억원이다. 공직자들이 그 동네에 많이 산다. 보통 근로자로는 꿈도 꿀 수 없는 돈이다. 봉급쟁이로 한 달에 1백만원 모으기도 어렵다. 그래도 허리를 졸라맨다고 하자. 일 년에 1천만원 저축하기도 버겁다. 꼬박 200년을 모아야 20억원이다. 대대손손 8대가 줄기차게 모아야만 그런 집 한 채 장만한다.

미쳤다. 미쳐도 한참 미쳤다. 미치지 않고는 이럴 수 없다. 제 정신 아니다. 광란이다. 참여정부 때 많이 올랐다. 강남 아파트는 더 치솟았다. 집값 잡는다고 여덟 차례나 강력 철퇴를 휘둘렀다. 극약 처방도 내렸다. 백약이 무효다. 서로 상대방 탓으로 돌린다. 정부는 투기 세력에 화살을 쏘아댄다. 돈푼 꽤나 있는 사람은 콧방귀 뀐다. 서민은 청와대 탓이라고 삿대질한다. 강남족은 그 틈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한 해 수억원을 번 셈이다.

그곳에 허름한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팔자가 핀다. 강남 가장은 신바람 난다. 콧노래가 절로 난다. 거기에 사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한다. 어떠한 잘못도 용서 받는다. 강남족은 모두 죄 사함 받는다. 면죄부가 따로 없다. 그곳 가장은 모두 멋진 남편이다. 유능한 아빠다. 다른 지역 가장은 처량하다. 주눅 들어 있다. 어깨가 쳐졌다. 고개도 들지 못한다. 모두 죄인이다. 별 볼일 없는 남편이요 아빠다. 체면이 안 선다. 불쌍하다. 땀 흘려 봐야 헛일이다. 발버둥 쳐봐도 헛수고다. 허탈감이 짓누른다. 푼푼이 모아봐야 허탕만 친다.

아아∼, 어쩌란 말인가. 부자장관 집단에 국민 위화감은 어찌할꼬. 억장이 무너진다. 어안이 벙벙하다. 씁쓸하다. 가슴앓이가 도진다. 다독거려도 가라않지 않는다. 운명이려니 해도 삭여지지 않는다. 팔자 탓으로 돌리자니 서글프다. 남편 자리가 무너진다. 가장의 영(令)도 안 선다. 일 할 의욕도 의지도 없다. 쎄빠지게 일하는 놈만 바보가 된다. 푸우~, 부동산에만 눈알을 팽글팽글 돌리는 건데…. 한숨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그래도 일을 하자.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지 아니한가. 배운 도둑질이라곤 일하는 것뿐이다. 꾹꾹 누르자. 또 누르자. 열불 내지 말자. 일터로 향하자. 거기가 우리 피난처다. 오를 때가 있으면 내릴 때도 있으리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