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서
외로워서
  • 육복수/시인
  • 승인 2008.02.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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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네 명이 있다. 명절을 맞아서 모인 것이다. 아버지를 포함한 친척 어른들이다. 만나자마자 건강은 좀 어떠냐고 서로 물어보더니 그 중 한 분이 가지고 온 청주를 소주잔에 조금씩 따르면서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더니, 이내 집안이 시끌시끌하다. 노인을 모시고 온 젊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웃으면서 옆에서 듣고 있다가 한 명씩 슬슬 빠져서는 뜰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거나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어른들의 옆에 앉아서 살굼살굼 그만 하시고 가자는 눈치를 하는데, 대화에 불이 붙은 어른들이 그것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술도 거나해지고 담배는 또 오죽 하시는가.

케케묵은 옛 이야기부터해서 주우욱 대화는 이어지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대화의 주된 내용은 없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제각각 하는 것이 아닌가. 가령, 한 사람이 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한 사람은 대통령에 대해서, 한 사람은 봄 농사에 대해서, 그러다가도 술잔이 비워지면 이내 채워주고, 그렇지 않냐고 자신이 하던 이야기에 동의를 구하면, 그려그려 하면서 지금까지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라도 한 듯, 그럴 듯하게 말을 이어주는 것이다. 옆에서 보기에는 말하는 사람만 있지 듣는 사람은 없어 보였는데, 어른들은 그것이 아니었다.

목청 높여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상대방의 이야기는 다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심지어는 가까이 지냈던 오래 전에 죽은 누군가를 들먹이면서 아이고 불쌍한 놈 어쩌고 하면서 서로 눈물을 흘려내는 것이다. 

그러기를 한 나절, 여든이 훨씬 지난 노구를 자식에게 의지한 채, 서로 건강하라고 허공에다 손을 몇 번이고 젓고 저으며 은근한 눈빛을 남기며 돌아갔다.

평소에는 기운이 모자라서 홀로 누구를 찾아다닌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다가, 명절에 자식을 앞세워 일 년에 고작 한두 번 얼굴을 보는 어른들이니 오죽 반갑고 애틋할 것인가. 집안에서 자식이나 손자와의 대화라고 해봐야 앞뒤가 똑 떨어지는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생각이 노인들의 그것과 맞겠는가.

안주를 흘리고 침을 튀기면서 술 취해서 목청껏 대화를 해도 노인들의 그것에는 애정이 담겨있음을, 삶의 끝자락에서 외로워서 외로워서 그런 것임을 젊은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우리의 부모세대가 그래도 따스한 사람의 온기를 가지고 있는 마지막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껴보는 명절이었다. 

- 아비 -

문을 열고
비오는 먼 산을
등신처럼 바라보다가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다시 바라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문을 닫는다

종일 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