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이허이
허이허이
  • 육복수
  • 승인 2008.02.18 16: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침, 종이 상자를 가지고 차를 몰아 그곳으로 갔다. 필경, 지나다니는 차에 치어 죽었을 빠빴하게 얼어붙은 개, 종이 상자에 담아서 근처의 산에다 옮겨 놓고는, 지금이라도 잘 가거라 이눔아라고 속으로 말하고는 돌아왔다.

갑사에서 청벽으로 가는 터널 입구에 이놈이 죽어있는 것을 본 것은 거의 한 달 전 쯤이다. 밤이고 아침이고 차를 몰고 다니다보면, 죽은 동물의 사체를 보는 일이 흔한 일이라 이놈도 그렇게 죽은 놈이겠거니 생각하면서,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개의 주인이나 치인 사람이 거둬주겠거니 했었는데, 이놈의 경우는 그게 아니었다.

처음 며칠은 아직 개의 주인이 발견을 못했나보다, 치인 사람의 양심이 아직은 덜 펴졌나 보다 하고, 차들이 지날 때마다 터럭 휘날리며 길 가장자리에 널부러져 있는 이놈을 보면서 지나쳤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마음이 부글부글거리며 무엇에랄 것 없이 아픔인지 슬픔이 밀려와서, 아내에게 저놈은 내 몫인 것 같다라고 했더니 그럴 것 같다며 쓸쓸하게 웃었다.

한 때, 자신이 가진 모든 여수와 재롱을 떨며 주인을 기쁘게 했을 것이고, 주인도 그것을 받아 들이며 사랑을 주고 귀여워했을 놈, 강중거리며 돌아다니는 한 목숨을 들이받고 빼앗고 오늘도 모르는 척, 차를 끌고 다니는 어떤 인간. 어디에선가 들어라. 인간이고 개고 생명은 생명이다. 그리고 어디에서 무슨 사고로든 죽거나 다칠 수는 있다. 문제는 그 후의 일이다.

그대의 사랑하는 무언가가 치어 죽어서 터널 입구에서 엄동 삭풍에 얼어서 널부러져 있다고 해보라.
그것도 오래오래. 자신과 관련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모르는 척, 세상 한 구석에 숨어서 이 겨울 따사롭게 보내는 것이 그렇게 좋은가 좋아.

차라리 죽어버려라. 오늘도 터널을 지나다닌다. 물론 그놈은 없다. 산에다 옮겨 놨으니 뭇 짐승들이 뜯어 먹거나 썩어 가겠지.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곳에 저곳에 그곳에 원인과 과정과 결과는 분명히 있다.

세상이 아무리 시리고 인간사가 아무리 얼어붙어 있어도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인간이 못해야 할 것이 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 그것이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든 생명이 다한 것에 대한 예의는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해야 할 일이고 인간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종이 상자에 담아서 산으로 보내던 그 녀석, 무게가 무겁더라.
허이허이..... 

라이터 속

내 여자 그 속에 있네
다만 태우기 위해서
찰랑거리며, 싸늘히 앉아있네.
칼 끝의 짐승처럼 앉아있네
뚫린 등짝처럼 앉아있네
흐르는 피처럼 앉아있네
감은 눈처럼 앉아있네
무덤처럼 앉아있네

내 젖 마르기를 기다려
내가 되고 싶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