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도 리모델링이 시작되고 있다.
내 마음에도 리모델링이 시작되고 있다.
  • 백제뉴스
  • 승인 2012.12.1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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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조영숙
조 영 숙

창문을 열자 한 장 밖에 남지 않은 달력이 바람에 흔들거린다. 12월 숫자가 적혀있는 한 장의 달력, 마치 마지막 잎새처럼 달랑달랑 벽에 매달려 있다.

벚꽃잔치 기대하며 봄을 기다렸던 3월부터 신나는 휴가 떠올리며 파란 설레임으로 기다렸던 7월의 여름방학,

추석 한가위 둥근 보름달로 명절분위기에 흠뻑 빠져있었던 9월,

첫눈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겨울방학이 선물처럼 들어있는 12월,

1년의 학사일정이 끝나고 계획했던 수많은 행사들이 하나 둘 정리되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롭게 만난 여러 동료교사들과 성격, 교직관, 가치관 파악하며 하루하루를 도움 받고 의견 교환했던 많은 시간들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얼마나 자주 함께 마주보며 식사를 했었던가?

얼마나 많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던가?

나이만큼, 경력만큼 성숙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열었었던가?

컴퓨터 앞에서 눈을 돌리니 옆자리, 앞자리에 아무도 없다. 어쩌다 교무실에 들어와도 각자의 컴퓨터에 앉아 할 일을 시작한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 전화벨 소리....... 가끔씩 들리는 기침 소리, 어떤 이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주위의 소리를 차단한다.

어쩌다 말을 걸면 이어폰을 빼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슨일이세요” 라며 묻는다.

밀린 업무, 처리해야 할 공문들, 학급 운영에 필요한 자료 제작으로 싱거운 농담 건넬 시간 없이 각자의 업무에 파묻혀 바쁘게 한 해를 보내고 말았다.

내일은 유치원 교무실에 낡은 책상을 교체하고 예쁘고 견고한 수납장이 들어오는 날이다.

서랍속의 낡은 볼펜, 오래된 메모종이, 말라버린 풀, 휘어진 클립들. 모두 꺼내 쓰레기통에 버리고 서랍을 하얗게 비웠다.

쓰레기통을 보면서 2012년도에 상처받았던 일들, 슬픔, 증오, 미움, 배신감, 억울함, 누명 같은 감정들을 모두 버리고 싶어졌다.

새 책상이 들어오기 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많은 일들을 종이에 적은 후 하나씩 하나씩 쓰레기통에 버리며 아팠던 마음을 지우려 한다.

그리고 새 책상에 새 마음으로 앉아서 앞에 있는 사람, 옆에 있는 사람 바라보며 상큼하고 따뜻한 허브같은 미소를 날려 보내리라.

새 가구, 새 책상을 리모델링하는 데는 돈이 들지만 새로운 다짐, 새로운 관계를 리모델링 하는데는 따뜻한 마음 하나 있으면 거뜬하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겨보면서.
/유구초병설유치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