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부랑말이면 다냐
꼬부랑말이면 다냐
  • 공주대 이필영 교수
  • 승인 2008.01.1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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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어젠다’가 뭐유?” “나도 잘 몰라요.”  “대학 선생이 그것도 모르우~…?” “왜, 그런 거요?”  “인수위가 8대 어젠다를 선정했다는데…?” “이룩해야 할 핵심과제를 뜻하는 거겠지….”  “???”

왜 이러는가. 이야기마다 꼬부랑말을 써야 하는 건가. 신문이고 텔레비전이고 꼬부랑말과 글 일색이다. 요즘 자주 등장하는 말만 추슬러도 숨이 막힌다. ‘멘토 로드맵 키워드 콘텐츠 코커스 네거티브 패러다임 벤치마킹 큐레이터 오픈옥션 펀더멘털 블루오션 방카쉬랑스 폴리스라인 콘트롤타워 태스크포스 브래들리효과 오픈프라이머리 글로벌스탠다드 서브프라임모기지 비지니스프랜들리…’ 현기증 난다. 두통이 밀려온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거 맞는가. 헷갈린다. 이래도 되는 건가. 꼬부랑말이면 다냐! 우리 국민 중 이런 해괴한 말 모두 아는 자 과연 얼마나 될까.

역사 이래 1천9백 년간 중국말이 판치더니, 1백 년은 왜말이 횡행했다. 그것도 모자라 60년 전부터는 서양말이라면 환장한다. 하기야 어찌하랴. ‘국어대사전’에서 순 우리말은 30%에도 못 미친다. 나머지는 모두 외래어다. 중국말 왜말 서양말이다.

그뿐인가. 우리 민족은 수 천 년 입을 봉하고 살았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조 말까지 백성의 입은 철저히 봉쇄됐다. 입은 있으나 언로는 막혀 있었다. 일제시대는 더욱 옥죄였다. 찍 소리조차 못 내었다. 해방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독재정부와 군사정권으로 40여 년을 굳게 다물고 살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 열풍으로 1987년에야 겨우 입이 열렸다. 백성의 입이 트인 지 겨우 20년이다. 2천 년 가까운 장구한 세월의 ‘입봉쇄’가 한꺼번에 분출한다. 참았던 말, 숨겼던 말, 쌓였던 말, 응어리 진 말이 앞 다퉈 표출된다. 이젠 말 못하고 죽은 귀신은 없다.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는다. 막말 쌍말 욕말이 마구 쏟아진다. 한술 더 뜨는 게 있다. 서양말이 폭죽처럼 터진다.

중국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과거제도를 엄격히 시행했다. 널리 인재를 등용하기 위함이다. 과거에 급제했다고 곧바로 등용하지 않았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의 기준으로 인물 됨됨이를 살폈다. 신(身)이란 무언가. 글자 그대로 몸이다. 건강한가. 용모는 단정한가. 품행은 바른가. 태도는 공손한가를 따졌다. 그 다음 기준이 언(言)이다. 품성 있는 말이 기준이다. 바른 말을 사용하는가. 예의에 맞는 말인가. 조리 있게 말하는가. 쉽고 정확하게 의견을 전달하는가. 품격 있는 말을 구사하는가.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말라’고 했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 온다”라는 속담도 있다. 중국 당나라 시인 백낙천은 시를 써 이웃 할머니께 들려준다. 쉽게 이해하는가. 생동감 있는 느낌을 주는가. 쉬운 말로 고치고 또 고쳤다. 둥구나무 아래 할머니들이 알아듣고 깔깔거려야 마침표를 찍었다. 참말을 쏟아냈다. 살아 있는 쉬운 말로 이야기했다.

지난 해 12월 26일에 있었던 일이다. 서울 서초구청에서 간부회의가 열렸다. 회의는 영어로 진행됐다. 2008년에는 분기에 한 차례씩 영어 회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서초구의 슬로건이 가관이다. ‘세계 명품도시를 지향하는 글로벌전략’이라나! 국장 과장 동장 60여 명 중 상당수가 입을 뗄 엄두도 못 냈다고 한다. 그 구청에선 주민에게 영어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건가. 서초구에는 유난히 외국인이 많은 건가. 아무리 국제화라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말은 사람의 특징이요, 겨레의 보람이요, 문화의 표상이다. 조선 말은, 우리 겨레가 반 만 년 역사적 생활에서 문화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결과이다.” 60여 년 전 처음 발간한 ‘우리말 큰사전’ 머리말 첫 구절이다.

영어가 아니면 아니 되는 건가. 요즘 아이들 영어 안 쓰면 쪽 팔린다나. 이야기 좀 들어보자. “파파! 스카이가 블루네요!” 기가 찰 노릇이다. “아빠! 하늘이 참 푸르네요!”라 하면 어디가 덧나는가. 다방에서 ‘밀크 완 컵, 플리스.’라 하면 유식한 건가. ‘우유 한 잔 주세요.’라 하면 무식한 건가. 시골 다방에서 한 노인이 ‘쇠젖 한 잔!’이라 했다가 쫓겨났다나! ‘에그 후라이 해 먹었다’라면 품위 있는 거고, “달걀 부쳐 먹었다”라고 말하면 어눌한 건가.

제발 말만큼은 쉽게 하자. 쉬운 말, 바른 말, 우리말 좀 하자. 꼬부랑말이면 다냐! 뭐라꼬? 전문용어라서 어쩔 수 없다고…. 그런 말은 전문가한테만 쓰라. 온 국민이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 아니한가. 왜 국민의 귀까지 열 받게 하나! 먹고 살기도 바쁜데…. 아~,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