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은근과 끈기' 가르치자
아이들에게 '은근과 끈기' 가르치자
  • 백제뉴스
  • 승인 2012.10.3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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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최창석 교육장
최 창 석 교육장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미당 서정주

만추의 계절, 노란 은행잎이 길거리를 뒤덮고 곳곳에서 국화 향기 은은한 10월 말이 되면 누구든 한번쯤 흥얼거리는 대표적인 가을 시이다.

한국의 대표 시 100선중의 하나이며 중학교, 고등학교의 국어교과서에 자주 실렸던 미당선생님의 시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3/4의 계절을 소쩍새가 울고,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이 울었으며, 잠 못 이루는 밤 무서리가 저리 많이 내렸던 것이다.

정말 길고 긴 인고의 시간들이 있었던 것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그렇게 많은 인고의 시간이 필요할진대 우리 인간의 성장과 교육 그리고 사람살이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원래 우리민족은 ‘은근과 끈기’의 민족, 참을성을 많이 가진 민족이었다. 가시는 님을 위해 진달래꽃을 뿌려서 사뿐히 즈려밟고 가게 해주었고, 사랑하는 님을 전쟁터에 보내며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옷고름을 깨물며 사립문 뒤에서 님을 전송하던 은근한 민족이었다.

‘아리랑’ 등 한국에 내려오는 많은 전통적인 노래 가사와 곡조처럼 수많은 자연재해와 이민족의 침입, 개인적인 아픔과 시련 속에서도 끊일 듯 끊일 듯 하면서도 끊이지 않고 민족의 정기를 이어왔고 가계의 맥을 이어왔다. 그 많은 질곡과 고통,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내면으로 내면으로 침잠하여 내 누님같이 성숙된 국화꽃 같은 민족이었다.

그러던 한국인들이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갑자기 급해졌다. 그동안 오천년 동안 못했던 욕망의 한풀이를 하듯 죽기 살기로 돈 벌어 최고로 먹고 마시고, 최고급 아파트에서 황제처럼 생활하며, 첨단 유행 옷을 입고 호사를 누리고 있다.

또 매사 ‘빨리 빨리’가 일상화 되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 빨리’란다. 물론 ‘빨리 빨리’ 문화가 못 살던 한국을 변화 발전시켜 지금의 세계 경제대국, IT 강국을 만든 것도 사실이고 한국인의 장점의 하나인 ‘Dynamic Korea'를 만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어느 통계에선가 한국인의 ‘울컥증’ 즉 급한 성정에서 참을성 없이 울컥해서 저지른 일에 대한 사회비용이 수 천억 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어느 사람은 한 순간의 울컥을 참아내지 못하고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며 요즈음 사춘기의 어린 학생이나 젊은이들이 한순간의 분노나 어려움을 참지 못하고 구만리 같은 인생을 끝내는 것이 그것이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은근의 멋’과 끈기를 가르쳐야겠다. 급하지 않게 직설적이지 않으면서도 은근하게 자신의 마음과 멋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 보자. 그리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끈기와 참을성도 가르쳐 보자. 우리 옛 속담에 참을 인(忍)이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

더그 브론슨이란 사람은 성공의 3P로 Passion(열정), Persistence(끈기), Patience(인내)를 들었다. 즉 은근과 끈기, 인내가 성공의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옛날에는 오래달리기라는 체력장도 있었고 몇 십리를 걸어서 학교에 다니기도 하였으며 시내버스 기다리길 몇 시간도 하였다. 남이 먹는 음식을 보고 배가 고프면 수돗가에 가서 물로 배를 채우고 참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려 옛날식 방법으로 지도할 수는 없지만 학교에서는 현재 교육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은근과 끈기를 가르쳐야겠다. 체육 시간의 운동, 과학시간의 실험, 미술시간에서 작품제작, 사회 시간의 시련극복의 역사, 국어시간의 글짓기와 문학 수업, 수학 문제풀이 등 많은 방법과 내용으로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는 방법을 가르쳤으면 한다.

학교에서 은근과 끈기를 지도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시와 문학 작품 등을 통하여 한국인의 은근과 끈기를 가르쳐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앞에 제시한 미당 선생님의 시를 외우며 기다림과 참을성의 미덕을 학생들이 음미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고 그 밖에 박경리의 ‘토지’ 등 장편 소설 그리고 한국의 정서를 대표하는 수많은 단편소설도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한국인의 DNA에 남아있는 ‘은근과 끈기’를 다시 한 번 살려내어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인생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즐기며 살게 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요즈음 충청남도교육청에서는 학생들의 정서교육과 표현력 증진을 위한 국어교육의 한 방안으로 ‘다정다감 국어 시 외우기’를 추진하고 있다. 아름다운 시를 암송함으로 학생들의 내면의 순수성을 일깨우고 정서를 순화하여 바른 품성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며, 아름다운 시귀를 외우고 그것을 말하기, 글쓰기에 적용함으로 표현력을 증대해 보자는 것이다.

현재 중, 고등학교 수준에 맞는 다정다감 시 100편이 각각 선정되고 책자로 만들어져 일선학교에 보급되어 있으며, 국어 선생님들을 비롯한 많은 선생님들이 호응하여 ‘다정다감 시외우기’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 공주지역에서도 11월 초순 공주교대부설초에서 대대적인 시외우기 축제가 이루어지며 이런 시외우기를 통하여 계절의 낭만을 느끼고 한국인의 은근과 끈기가 지도되었으면 한다. 국화 향기가 짙어가는 이 계절에 우리 사랑하는 학생들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은근과 끈기를 마음속에 담아두길 기대해 본다.

/2012년 10월의 마지막 밤. 봉황산록 수청골길 누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