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판도 잘보면 팔만대장경이다'
'빨래판도 잘보면 팔만대장경이다'
  • 이원구 기자
  • 승인 2012.07.2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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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전병철 지음
새 책 '빨래판도 잘보면 팔만대장경이다'.

'빨래판도 잘 보면 팔만대장경이다'는 학교 수업시간이나 문화유산 답사를 갔을 때, 역사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역사적 사건을 두고 갑론을박할 때 알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역사 용어와 역사 상식이 총망라되어 있는 책이다.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고 있으며 그 분량 또한 적지 않지만, 재미있는 해설과 적재적소의 다양한 컬러 사진, 사진보다 오히려 더 상세한 그림을 곁들여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음으로써 역사에 대한 ‘구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자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탑은 다 가짜(?)

죽은 자에 대한 예절은 언제나 중요시되고 있다. 저자는 탑과 관련하여 불가(佛家)의 장례 풍속인 다비(茶毘)와 사리(舍利)에 주목한다.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하고 있는 근본팔탑 속 사리들이 여러 나라에까지 전파되었다.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곳이며, 따라서 석가모니의 사리가 모셔지지 않은 탑은 엄밀한 의미에서 탑이라고 할 수 없다. 대부분의 탑은 다 가짜(?)인 셈이다. 탑이 아닌 것 같지만 법주사 팔상전이나 쌍봉사 대웅전은 내부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기에 각기 5층 목탑, 3층 목탑에 해당한다는 상식도 알 수 있다.

탑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을 들려주면서도 저자는 스님의 사리탑인 부도[승탑(僧塔)]의 인간적인 면모에 눈길을 주고, 그저 사람들이 소원을 담아 쌓아놓은 ‘돌탑’이야말로 비록 사리가 없어도 진짜 탑이 아닐까! 하고 묻는다.

탑을 보면 그 시대 정치가 보인다

탑은 국민의 정신을 통일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 왕권 강화를 꾀할 수 있는 사상으로서 불교 발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므로 탑에는 그 시대 정치가 반영되어 있다.

이 책에는 전해지는 것이 많지 않아 더욱 각별한 삼국시대의 탑들, ‘3국을 통일하였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안정감 있는 통일신라의 3층 석탑들, 개성이 강한 다양한 형태의 고려 탑들, 많지만 상대적으로 가치가 줄어든 조선시대 탑까지 탑의 역사가 망라되어 있다.

탑의 세부 모습이 담긴 그림과 상세한 설명이 유익하고, ‘위치-형태/층수-재료’에 따라 탑의 됨됨이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저자의 공력이 대단하다.

불상만 봐도 그 시대 정치가 보인다

그리고 불상의 발견지‧출토지, 불상이 만들어진 재료, 불상 주인공의 신분, 불상의 자세까지 언급하며 수많은 불상의 이름을 살펴보는 방법을 조근조근 들려주는 저자의 친절한 강의가 이어진다. 웃으랴 고민하랴 고생 많았던 삼국시대 불상, 멋있고 야한 통일신라 불상, 불쌍할 정도로 못생긴 고려시대 불상…….

탑과 마찬가지로 불상도 그 불상이 만들어진 그 시대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를 잘 살펴보면 그 당시에 왜 그런 문화가 유행했는지, 왜 그런 문화재가 만들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문화는 사람들의 삶이 예술적으로 녹아난 것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불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문화재 차원에서만 이해해서도 안 되고, 예배 대상으로서 종교적으로만 접근해서도 안 되며, 모름지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다양한 방향에서 인간들의 삶과 연결해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보 같은데 보물이라니

문화재를 국보와 보물로 구별하는 것은 문화재의 가치를 따져 우열을 가리는 데 있지 않고,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적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문화재 지정 번호는 단순히 그 번호가 붙여진 순서를 의미할 뿐 번호가 빠르다고 하여 우수한 문화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사적과 명승, 천연기념물은 모두 기념물이라는 사실 등 상식을 알아가는 재미가 크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문화재들에 마음이 쓰이는 저자는 천생 우리의 문화유산 지킴이라고 하겠다.

건물에도 신분과 서열이 있었다

○○궁, ○○전, ○○당, ○○각, ○○사, ○○재, ○○헌, ○○루, ○○정, ○○대, ○○관……. 예전에 지어진 건물들은 나름 원칙에 따라 이름이 지어졌다. 따라서 그 원리만 알면 답사 현장에서 ‘저것은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던 것들을 크게 덜 수 있다. 외우려 하지 말고 그 원리만 터득하면 된다.

이 책에는 가(家), 옥(屋), 저(邸), 댁‧택(宅), 무(廡), 우(宇), 주(宙), 호(户), 처(處), 소(所) 등은 물론 궁(宮), 궐(闕)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건물의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누(樓), 정(亭) 등에 설명과 자세한 그림과 사진까지 곁들인 문(門, Gate), 주(柱)[기둥] 등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면 건축에 대한 저자의 박식함에 감탄하게 되고, 사람 따라 건물에도 서열이 있었다는 점이 저절로 이해된다.

절 건물도 주인 따라 정해졌다

우리의 역사와 불교의 역사, 문화재를 아우르는 저자의 강의는 이 책의 의미가 얼마나 큰지 새삼스레 느끼게 해준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보는 게 중요하다. 사찰에는 본사가 있고 말사가 있으며, 또 이판이 있고 사판이 있으며, 세상에는 불교가 있고 기독교가 있고 이슬람교가 있고 이외에도 많은 종교가 있지만, 누가 더 높고 낮은지, 누가 더 옳고 그른지 나눌 수는 없다. 본사는 본사대로 말사는 말사대로, 이판승은 이판승대로 사판승은 사판승대로, 불교는 불교대로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다 소중할 뿐이다. 겉으로 다른 것 같지만 막상 같을 수 있고, 둘 같지만 하나일 수 있다. 우리 문화유산 또한 단순히 옛사람들이 남겨놓은 문화유산 또한 단순히 옛사람들이 남겨놓은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얼굴일 수 있다. 나아가 사찰에 있는 건물이나 각종 유산은 불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유산이며 내 자신의 보물이기도 하다.”

전병철 굳이 ‘인간’이란 호를 쓰고 있는 전병철은 충남 금산에서 태어나 부리중과 대전고, 공주사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현재 공주고등학교와 공주대 역사교육과에서 역사를 보듬고 있다. 『삶의 문학』, 『시와 사회』를 통해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참교육문학상’을 받았으며, 현재 ‘한국작가회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팔만대장경도 모르면 빨래판이다』, 『그래도 밥은 꼭 먹는다』 등을 썼으며, 『이미지 프로그램의 수업활용』, 『마주보는 한일사』, 『역사교사로 산다는 것』, 『그래, 지금은 조금 흔들려도 괜찮아』 등을 함께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