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 것
몹쓸 것
  • 육복수/시인
  • 승인 2007.12.26 17: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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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니지 못하는 아버지는 하루 종일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면서 방안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글을 모르므로 책을 볼 수는 없고, 유일한 낙이 텔레비전 시청이다.

햇살 좋은 낮에는 가끔 앉질 걸음으로 거실문에 덧대어놓은 들마루에 나와서 해바라기를 한다.

평생을 즐기던 술도 작년의 다친 후로는 끊고 오직 텔레비전과 해바라기로 세월을 보내고 계시다.

우리집은 마을과 많이 떨어진 산에 있어서 전화는 물론이고 라디오도 나오지를 않고, 텔레비전도 유선방송사를 불러서 안테나를 단 후에야 나왔다. 세상의 일과는 무관하자고 마음먹고 이 터를 잡아 앉았는데, 텔레비전이 영판 마음에 거슬려서 처음에는 아버지께 소리를 좀 낮추시라 밤에는 끄고 주무시라고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나도 모르게 가끔 뉴스를 보고 어쩌고 하다가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아들 녀석이 한 대 더 장만하자는 말에 홀랑 넘어가서는 오히려 내가 즐겨보는 지경이다.

자연히 책을 보는 시간이 짧아지고 텔레비전에서 쏟아내는 갖가지 사건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시간을 줄이고 특정 프로그램만 보자고 마음먹었는데도 그것이 쉽지를 않고, 급기야 내가 이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 텔레비전을 없애려고 하는데, 아들 녀석이 이제는 반발이다.

무슨 큰 아가리에서 오물이 넘쳐나오 듯, 오늘도 쏟아져 나오는 저 엄청난 세상사의 구역질나는 냄새여.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철천지원수처럼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는 대통령되고자 하는 자들의 작태, 배와 배끼리 부딪쳐 바다가 기름으로 뒤덮인 재앙들, 사람을 차로 디려치고는 죽게하고 총을 빼앗아가는 흉칙한 말종의 행태, 점수를 비관한 꽃 같은 것들의 투신자살.

이제는 안 되겠다, 나를 항복시키고 아들을 설득해서라도 저 몹쓸 것을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해야겠다. 아버지 방의 것은 어쩔 수 없이 그냥 두더라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데, 좋은 생각과 예쁜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쓸쓸해지는 시기에, 이 무슨 무지막지한 아가리의 영상에 눈을 처박고 정신을 놓고 있는가.

돌아오는 일요일에는 마음 예쁜 아는 이들을 불러서, 가마솥에 닭 몇 마리를 푹 고아서 송년을 겸한 좋은 대화를 나누며 한 해를 마무리 해야지.

저 몹쓸 놈의 텔레비전은 그 전에 처리하고.

- 볏짚을 태우며 -

발그레한 기억의
검불들
저리 가벼이 흩어지는 것은
뼈가
녹아내렸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