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배우려고 아파트 한 채 값 수업료로 썼죠"
"그림 배우려고 아파트 한 채 값 수업료로 썼죠"
  • 심규상 기자
  • 승인 2012.01.2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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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민화작가 전혜숙씨
민화작가 전혜숙씨

'민화(民畵)'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까치 호랑이'다. 곶감보다 무서운 호랑이지만 '까치 호랑이'는 정반대다.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민화 속 호랑이를 보면 우는 아이의 울음도 그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서워가 아니라 어설퍼 보이기 때문이다. 그 만큼 민화 속 호랑이는 친근하다. 소나무에 걸터앉은 까치도 호랑이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눈치다. 더 지켜보고 있으면 호랑이 등위로 내려앉을 것만 같다.

설날 연휴에 만난 민화작가 전혜숙씨의 이미지 또한 '까치 호랑이'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10여 년째 민화를 공부해온 그는 요즘도 하루 대부분을 민화에 빠져 산다. 민화는 전 씨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대전의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저 학년 때부터 엄마 손에 이끌려 무용학원, 피아노 학원 등 이런 저런 학원을 전전했다. 소질을 찾아 계발해 주려는 엄마와 이를 극성맞다고 생각한 딸의 간극은 서예학원에서 공통분모를 찾았다.

민화의 아름다운 색채에 빠져 공직을 버리다

전씨는 서예에 흥미를 느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한 서예는 고등학생 때에 이르자 사군자 그리기로 이어졌다. 대학졸업 후 공직을 시작했지만 서예와 그림그리기는 계속됐다. 수채화를 그리다 다시 유화를 배웠다. 산수화를 배우다 수묵화를 그렸다. 초상화, 닥종이 인형, 한지공예, 단청, 탱화...그러다 민화를 만났다.

"공직생활을 시작한 지 10여년 쯤 지났을 무렵이었어요. 민화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아, 그런데 이거다 싶은 거예요. 여러 그림을 접해왔지만 민화의 채색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또 배우기 쉬웠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어렵다고 하는데 저는 수채화에 유화, 단청 등 다른 그림을 배운 때문에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이때부터 민화에 빠져 버렸어요."

민화가 눈에 크게 들어오자 삶의 존재이유 또한 민화가 됐다. 그는 13년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정리했다. 이후 민화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스승을 찾아 나섰다.

"참 많은 선생님을 만났어요. 많이 만났다는 건 그만큼 선생님을 많이 바꿨다는 얘기입니다. 당시는 민화 선생님들이 많이 없기도 했지만 상업적 이유로 민화를 그리는 노하우를 제대로 전수시켜주지 않았어요. 수업료를 많이 받을 요량으로 1년이면 배울 분량을 4∼5년씩, 2∼3년이면 배울 분량을 10년 이상 시간을 끌은 거죠. 그래서 선생님을 자주 바꿨어요."

하루 10시간 이상 몰두

전씨의 민화 배우는 속도는 남달랐다. 민화를 시작한 지 수년 만에 '한국민화 작가회'에 이름을 올렸다(2004년). 2005년에는 독일 국립 궤팅겐대학교 초청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새 발톱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 8권의 국내외 책을 구해 보기도 했다. 하루 10시간 이상 민화를 그렸다. 몇 년 동안은 하루 18시간 씩 그리기도 했다.

"잘 가르쳐 주지 않으려 하니 혼자 배울 수밖에요. 통상 작가에 등단하려면 10년이 걸리는데 저는 몇 년 만에 좋은 평가로 작가가 됐어요. 열심히도 했지만 수채화나 수묵화 등을 배운 것이 민화 실력을 늘리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는 지난해 초경, 대전 은행동에 전통찻집을 열었다. 찻집을 운영하며 틈틈이 민화를 그릴 요량이었다. 찻집 안은 그가 그린 민화 작품으로 채웠다. 찻집을 연지 불과 몇 개월 만에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떴다. 전씨의 충격은 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찻집 문을 닫아걸고 6개월 동안 민화만 그렸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아니 하고 싶지 않았어요."

'화실'로 바뀐 찻집

그는 찻집 문을 다시 열며 가게 문 앞 '전통다원' 글씨 옆에 '화실'이라는 글씨를 새겨 넣었다. '민화 수강생 모집'이라는 설명문도 곁들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전 유언처럼 하신 말씀 때문이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죽을 때까지 혼자만의 작업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펼쳐놓고 남을 가르치라'고 하시더군요. 곰곰이 생각하다 다른 사람에게 제 노하우를 가르칠 결심을 했어요."

그의 찻집은 2개월 전부터 찻집이면서 화실이다. 한켠에서는 차를 마시며 민화를 감상하고 한켠에서는 수강생들이 민화를 그린다.

"색감을 다루는 기초가 있어야 민화 그리기에 유리해요. 저는 수강생들에게 수채화와 유화를 그리는 기법을 동시에 가르쳐요. 그러니 초보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미술학원에 따로 다닐 필요가 없죠. 2~3년만 배우면 혼자서 자유자재로 민화를 그릴 수 있게 제 모든 것을 전수하려고 합니다."

어머니 유언 "아는 것 모두 펼쳐놓고 남을 가르쳐라"

전씨가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그림을 배우기 위해 아파트 한 채 값을 수업료로 썼어요. 너무 어렵게 배우다보니 저 또한 배운 것을 끌어안고 있을 요량이었어요. 심경에 변화를 준 사람은 어머니예요. 아까도 말했지만 돌아가시기 전 '공부는 남 주기 위해 하는 것인데 혼자만 배워 알고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셨어요. 제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나는 물론 민화를 더욱 발전시키는 길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어요. 2~3년만 꾸준히 배우면 나가서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에게 민화의 매력을 물었다.

"우선 민화만큼 공감하기 쉬운 그림은 없어요. 그림을 접한 누구나 쉽게 공감해요. 삶의 소망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부부가 거처하는 방안에 걸린 화조화는 사로 사랑하며 건강하게 살게 해달라는 뜻이 담겨 있어요. 봉황과 오동, 백로와 연꽃, 학과 소나무는 불로장생과 화목을 의미합니다. 모란은 부귀영화를 뜻해요. 물고기를 그린 '어락도'는 풍요롭고 다정한 가정을 뜻하지요.'신선도'는 신선에게 복을 비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십장생은 장수를 상징하구요. 이게 사람 사는 이야기이니 공감하기 쉬울 수밖에요."

민화에 빠져 사는 그의 소망은 민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거다.

"예전에 비해 민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하지만 대전만 해도 민화작가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어요. 민화는 전통문화이고 우리 예술이에요. 옛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호랑이나 용 그림을 벽에 걸거나 문에 붙여 놓고 한해의 평안을 빌었어요. 옛 사람들의 소박한 삶의 형식을 본받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