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김장
  • 육복수/시인
  • 승인 2007.12.1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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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김장은 아내와 둘이서만 했다. 지난해까지는 아내의 친구 등 여러 명이 모여서 왁자하니 떠들며, 수육을 삶고 막걸리를 사가지고 와서는 거나하게 한 덕분에, 재미도 있었고 김치의 맛도 그런대로 좋았었다.

여러 사람이 모이다보니 손맛도 제각각이고, 지방마다 집안마다 김치 담그는 내력들이 달라서인지 맛은 있는데 어느 지방의 김치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령, 전라도는 젓갈을 많이 넣는다든지 경상도는 맵고 짜게 담는다든지 하는 식의 구별 없이, 이것도 넣고 저것도 하는 잡탕의 김장이 되어서, 올해는 그냥 맛있는 김장이 아니라 우리 식구가 좋아하는 맛을 내는 김치를 담아보자는 생각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김장을 했다.

으레 여럿이서 했던 일이라 늘 뒷전에 있다가, 막상 하려니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멀거니 서서 아내가 하는 일을 보고 있다가 그걸 되받아서 하는 식, 즉 힘이 들어가는 일의 위주로 하다 보니 김장이라는 것이 장난이 아니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왜 여럿이서 어울렁더울렁 하는지를 알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고 지겨워져서 맛이 어쩌고 하는 생각은 없어지고 얼른 해치웠으면 하는데 아내는 느릿느릿 태연하다. 여자는 독한 것이 맞다.

그러나 배추를 버무릴 때쯤에는 아들과 나는 힘이 절로 났다. 왜겠는가, 낭창낭창한 배추 잎에 양념을 묻혀 김 모락모락 나는 수육을 싸서 막걸리와 먹는 맛, 말이 필요 없다. 지나가는 소리로 듣기에 양념 풀을 보리쌀로 했다는 것 밖에, 내가 보기에는 여느 김장때와 다른 것이 없어 보였고, 그것을 그렇게 해서 묻어두면 김치의 맛이 오래 아작거리며 시원하다나 뭐라나.

어쨌든 뒤뜰 음달진 곳 땅 속에서 김치가 익어간다. 어느 지방 어떤 맛이 나올지는 몰라도, 최소한 우리가 좋아하는 양념을 택해 우리 식으로 누구의 손맛도 빌리지 않고 담갔다는 것, 그러나 자기만의 독특한 맛을 지닌다는 것은 무엇이든 결코  한 두 번의 시행착오로는 어림이 없다는 것, 다양한맛에 길들여져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그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 행동양식을 한 번쯤 되짚어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올해 김장의 최고 맛이겠다.

겨울 더 깊어가고 깊숙해져서 눈 펄펄 내리는 날, 김장독의 김치를 꺼내 길게 주욱 찢어서 확인해 봐야지 무슨 맛이 어떻게 나는지를.

- 주정 -

이제는 술 취해도
그냥 자지요
그냥 안자도 별 수 없더군요
잠이 보약인줄 알았어요
늘어지게 늘어지게
자고 난 아침
혹시 아나요
내가 없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