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 백제뉴스
  • 승인 2011.09.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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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산을 좋아해서 1년에 서너 번 정도 대전근교의 산을 산책 수준의 등산을 하는데 원래 등산을 좋아하지 않은 터라 산을 오르다 다리도 아프고 힘도 들고 해서 자주 가던 길을 멈추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쉬게 된다. 이렇게 쉴 때면 얼마나 남았는지 정상을 한 번 처다 보기도 하고, 나무 사이로 하늘도 한 번 처다 보고, 주위의 나무며 무성하게 자란 이름 모를 풀들도 살펴본다. 그런 중에 빠뜨리지 않고 보는 것이 힘들게 온 길이 얼마 만큼인지 확인하는 일이다.

인생을 살다가도 힘든 상황을 만나거나 복잡한 일을 만나면 산을 오를 때처럼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부분들을 회고하곤 한다. 제대로 살아왔는지, 최선을 다했는지, 순간순간 올바른 판단을 했는지, 잘못된 것은 없는지, 게으름 핀 것은 없는지, 방향은 올바로 잡고 있는지, 자기의 욕심은 없었는지 등 살아온 족적을 더듬어 보면서 점검하고 바로잡을 것은 바로 잡고 부족한 것은 채우며 다시 출발하기 위한 숨을 돌린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 앞에 올바로 서 있는지, 교만은 없었는지, 하나님보다 내가 앞서서 결정하고 고집을 부린 것은 없는지 등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침묵하며 하나님께 질문하곤 한다. 그래서 요즘 벧엘의집 운영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벧엘의집은 올해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기준을 갖추기 위해 준비된 것 하나 없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도하며 이전을 추진했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의 도움과 기도로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월 공간을 이전했다. 공간을 이전하는 과정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공간을 이전하고 나서 갑자기 불어난 월세며, 유지비 등이 서서히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하더니 끝내 일꾼들의 급여를 지급할 수 없는 상황까지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자활공동체인 야베스공동체도 올해 운영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사실 급여를 제 때 못 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초기에는 이 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급여를 못 주는 정도가 아니라 운영자금이 부족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당시의 어려움은 처음이니 그렇겠지 하면서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잘 견뎌냈었는데 이번 일은 가던 길을 멈추고 지난날을 돌아보며 점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3년 전 대전역에서 노숙체험과 무료급식을 시작으로 사회선교의 모범을 세우고, 목사로 부름 받은 사명을 다하고자 했던 벧엘의집 사역이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어려운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었고, 외로운 사람들의 비빌 언덕이 되었고, 실패와 좌절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일어서는 자리가 되는 등 처음 잡았던 방향으로는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때론 독선적이다, 고집불통이다, 일꾼들을 혹사시킨다, 욕심이 많다. 등 많은 오해와 질시를 받으면서도 언젠가는 내 꿈을 알아주리라 믿으며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어떤 경우는 부담스런 사람, 문제제기를 잘 하는 사람, 잘난 척 하는 사람 등 이방인 취급을 받을 때도 내 원칙은 틀리지 않았다고 믿으며 처음 대전역에서 고백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느 때는 내가 주장하고 실험했던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는 마음 한구석에 내 길이 옳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뿌듯해하기도 했다. 이런 저런 흠결은 있을지라도 나름대로 처음 고백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한 길을 달려왔다고 자부했는데 이번 어려움을 계기로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을 잠시 멈추고 지나온 날을 돌아보니 초심에서 한참을 벗어난 것 같다.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여겼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는가? 최소한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고 왔지만 정말 옳았는가? 벧엘이 나의 전부라고 말하면서 벧엘을 위해 헌신한다고 했지만 그 속에는 자신을 위한 사심은 정말 없었던가?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교만했고, 고집불통이었고, 사심이 많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실무자들에게는 권위적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들의 삶의 자리에 함께 있기보다는 그들 위에 군림하려했고, 타성에 젖어 본질을 잃어버렸다. 끊임없이 사회사업가가 아닌 하나님을 올바로 믿고 따르는 목사로, 사회를 개혁하는 운동가로, 더불어 살아가는 친구로 살겠다고 다짐하던 초심은 없어지고 한 기관을 운영하는 운영자의 모습뿐이다. 처음 대전역에서 난 당신들에게 밥 주는 목사가 아닌 당신들의 비빌 언덕이 되고, 친구가 되어 함께 살자고 했던 약속은 사라지고 밥 주는 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본 내 모습은 이렇게 독선과 아집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려 본질에서 멀리 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벧엘의집의 어려움을 통해 본질로 돌아갈 수 있는 은총을 베푸신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 계기가 아니었으면 나는 더욱 교만해졌을 것이고, 본질을 잃어버렸을 것이고, 그들의 삶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고, 사심을 채우는 사람으로 변질되었을 것이고, 밥 주는 자의 달콤함에 빠져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벧엘의집의 어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으로 독선과 아집으로 딱딱해진 마음을 녹여 본질로 돌아가라는 명령인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살아온 날을 점검하고 새롭게 출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