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제와 문화
대백제와 문화
  • 윤여관 우금티기념사업회 이사
  • 승인 2007.12.0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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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회 백제문화제가 끝났다. 공주와 부여를 오가며 격년으로 4-5억 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되던 것에 비해 30억 원이 투입되고 공주와 부여에서 동시에 진행된 이번 백제문화제에 새롭게 등장한 단어가 ‘대백제’다.
 
대는 소의 상대적 개념이다. 내가 남을 대로 부르고 나를 소로 칭하는 것은 겸손을 통해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는 예의 근원이다. 나 스스로를 대로 칭하는 것은 패권 아닌가? 우리는 남이 우리를 대로 칭할 만한 무엇을 행하고 있는 것인가? 최고나 최대 같은 패권적 단어가 들끓는 시대에 백제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영토의 크기로는 고구려보다 작고 역사의 시간으로 봐도 백제는 신라보다 짧은데.......

 백제가 존재했던 시기는 한반도에서 영토전쟁과 패권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시대였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비슷한 상황이 그보다 1000년 쯤 후에 한반도에서는 벌어진 것이다. 온조왕에서 시작해서 패망한 의자왕에 이르는 동안 온전히 늙어 죽은 왕은 대여섯 명 뿐이고 10여 명은 의문사나 병사, 나머지 열댓 명 중 반은 권력암투과정에서 피살당했고 반은 고구려, 신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개로왕은 고구려 장수왕에게 참수 당했고 성왕의 목은 신라 북청계단 밑에 묻히고 몸만 돌아왔다. 엄밀한 의미에서 백제는 고대국가의 모습을 완성하지 못한 채 패권적 영토전쟁에서 상대적으로 그 힘이 약해 패망한 나라이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하기 바로 전에 있었던 황산벌 전투에 참가한 병사의 수가 5천명이고 사료 여기저기의 사건에 등장하는 병력의 규모가 2천에서 5천 명 정도인 것으로 미루어 백제의 상비군은 1만 명 남짓이 아닐까 추정된다. 수 백 년 패권전쟁에서 왕의 목도 잘릴 만큼 처참한 전투에 참가한 수만 수십만 병사들은 칼에 베이고 화살이 꽂히고 창에 찔려 목숨이 넘어가면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그 때문에 연쇄적으로 죽어간 노인과 여자 어린아이들은 또 무엇을 꿈꿨을까? 내가 왜 죽어야 하나? 내 후손들도 이런 비참한 삶과 참혹한 죽음을 맞아야 하나? 어려울 때 나누고 도와서 근원적으로 전쟁을 없애고 야만과 폭력이 아닌 생명과 평화의 문명적 가치를 세울 수는 없는 것일까? TV나 신문으로 전해지는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분쟁지역 난민들을 볼 때 백제 땅 이곳저곳에서 죽어가는 조상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신라나 고구려에 가뭄이 들었을 때 백제가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 혹은 반대의 기록을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영토 넓히고 상대를 힘으로 굴복시키기에 혈안이 되었던 시대였고 적개심에 불타는 호전성이야말로 멋있는 남자의 모델로 여기던 때였다.
 
이상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勝利라는 단어는 본래 義勝利다. 의가 리를 이긴다는 것이다. 武라는 글자가 창을 멈춘다는 의미를 품기까지는 수십 수백만 사람의 피를 뿌린 후에야 가능했던 것인데 여전히 백제문화제에 살인무기가 주된 소품으로 등장하는 것은 단순한 볼거리, 건강한 스포츠로 보기 어렵지 않을까? 무가 지켜야할 정말 소중한 가치를 백제문화제를 통해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백제가 패망한 것은 역사의 당연한 귀결이다. 고구려도 신라도 당나라도 마찬가지다. 한 국가, 한 시대, 한 문명이 평화와 인도주의, 생명과 나눔 같은 철학으로 인간과 자연의 태평세를 추구하지 않고 패권으로 치닫는다면 그런 나라나 집단은 역사 속으로 빨리 사라져 주는 것이 인류문명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까?
 
백제문화제를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스스로 크다고 떠벌리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대백제’를 외치기 전에 백제문화제 기간만이라도 차를 멈춰 지구를 생각하고, 옛 고구려, 백제와 교역이 있었다는 동남아시아나 세계의 어려운 지역에 구호품과 책과 식량을 보내는 활동 같은 일들이 벌어질 때 우리는 새로운 백제문화의 기원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명, 평화 나눔의 철학들이 펼쳐질 때 자연스럽게 불러주는 칭호로서의 대백제가 진짜 아닐까? 이 땅의 씨알 조상이 미처 할 수 없었던 것을 후손들이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수많은 전투에서 화살과 창과 칼에 의해 죽어간 백제의 귀신들은 자신들을 죽인 칼과 창과 화살이 1500년 후에도 여전히 등장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공주와 부여를 중심으로 열리는 백제문화제는 현재 공주와 부여의 문화적 수준을 결코 뛰어 넘을 수 없다. 우리일상의 문화적 폭과 깊이를 신장하는 것이 관건 아닐까? 없는 쑈를 사오기보다는 일상의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활성화해서,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장으로서의 백제문화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