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겨울나기
  • 육복수/시인
  • 승인 2007.11.2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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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단풍이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며칠 사이에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어, 나무들의 살이 내리고 잎들이 사그라들고 낙엽들이 발목까지 빠지네.

  무슨 아픈 속사연이 그리 깊이 있는지 숨을 품었다가 내쉬는 듯, 아침저녁으로  작은 개울 옆에서는 뽀오얀 안개가 전설처럼 피어오르며 비몽사몽을 모습으로 보여주는 듯, 겨울로 가는 산의 풍경은 늘 이렇다. 좀 더 날씨가 추워지면 곤충과 새들과 산짐승도 왔던 곳으로 돌아가거나 긴긴 겨울잠을 자거나 모진 겨울나기의 습생을 위해서 안간힘으로 온 산을 헤매겠지.

  우리 집도 이 녀석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가을에 걷은 것들을 거둬서 말리어 단지에 꼭꼭 넣어서 저장하고, 집주변의 부실한 곳들을 손보고, 머루와 다래와 설이의 집을 챙겨주고, 이제는 땔감을 해야 한다. 시골생활이라는 것이, 돈으로 때울 것은 돈으로 때우지만 몸으로 해결해야할 것은 몸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돈을 쌓아놓고 살지 않는 이상은 할 것은 해야 한다.

  작년에 해놓은 땔감이 거의 떨어진 상태고 우리집 아궁이는 기름과 나무를 번갈아 사용하는 곳이라서, 올해의 유난한 기름 값이 무서워라도 부지런히 나무를 해야 한다. 다행히 지금은 시골도 나무를 때는 집이 별로 없어서 톱과 지게를 지고 산을 올라가면 지천으로 널린 것이 나무다.

  아궁이에 넣을 만큼의 크기로 자르고 톱으로 나무를 베어서 지게에 올려 능청능청 지고 내려오는 그 무게의 뿌듯함은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못한다. 그것을 아궁이에 넣고 따뜻한 방에 식구들이 모여 앉아서 두런두런 추운 겨울을 지나간다고 생각해보라, 좋지 않은가 얼마나 좋은가.

  사람살이의 모든 것을 금전으로 해결하는 도시의 아파트 생활이 편하기는 얼마나 편한가. 그러나 마당에 내어놓은 화초의 잎을 뜯어먹고 있는 이른 아침 고라니의 엉덩이를 한 번 만이라도 본 사람은 자연의 경이를 알 것이다.

  이 쪽 능선에서 내가 어디여 하고 부르면, 저 쪽 능선에서 아내가 소리친다.

  “내 옷 내놔아아” 자신이 무슨 선년가. 

- 톱밥 -

짤리고 찍혀서
가루가 되어도
너는 나무다
어느 번듯한 가구보다도,
눌리고 눌려 다시
짤리고 찍혀도
너는 나무의 혼이다
어느 웅장한 고목보다도,
추운 어느 날
아궁이의 그을음으로
남는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