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자활에 대한 상념
노숙인 자활에 대한 상념
  • 백제뉴스
  • 승인 2011.08.19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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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벧엘의집 식구들의 자활을 꿈꾸며 시작된 야베스공동체가 벌써 5년을 넘겼다. 출발 당시만 해도 한 달만 버텨주었으면, 아니 한 1년 만 버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순간순간의 어려움을 버텨내며 왔던 것이 이렇게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런 안도감도 잠시, 올해 들어 야베스공동체가 경영상의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위기는 9월말로 외부의 지원이 모두 종료됨으로 야베스공동체의 존립이 위태로워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스스로 자립의 길을 준비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야베스공동체가 효율만을 따지지 않고 창립정신인 ‘혼자 열 걸음이 아닌 열이 한 걸음씩’이란 정신을 충실하게 실현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도 하기에 더욱 안타깝다.

아직 우리 사회는 사회적 기업이 기업의 정신을 구현하며 존재하기에는 사회적 토양이 너무 척박하다. 어떤 사회적 기업이든지 자본주의 경쟁시장에서 탈락된 사람들, 즉 노동력이 부실한 사람들과 함께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드물 것이다. 사회적 기업도 여전히 효율성과 노동능력을 고려하여 기업을 운영해야 그나마 경쟁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베스공동체는 당차게 세상을 향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립의 기적을 이뤄보겠다고 큰소리는 쳤지만 현재의 모습은 상처뿐인 영광만 남은 것처럼 여기저기 경쟁시장의 냉혹함에 찢긴 상처들로 너덜너덜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는 것이기에 최대한 인원을 감축하여 자체적으로 굴러갈 수 있는 최소한의 인력으로 우리끼리 자력갱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야베스공동체 단독으로는 자립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선은 어떻게든 꾸려갈 수 있겠지만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시장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지고 있고, 아무리 애써도 지금의 노동력으로는 임금은커녕 운영비도 나올 것 같지가 않다. 숯부작 사업부는 지금의 매출보다 2/3의 매출이 더 올라야만 간신히 최소한의 인력으로 감축한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줄 수 있으며, 세탁사업부도 지금보다 2배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숯부작은 시장이 포화상태여서 영업을 하면 할수록 비용은 많이 들고 매출도 쉽게 올라갈 것 같지가 않다. 세탁사업부도 영업은 가능한데 현재 노동력으로는 현재의 물량도 간신히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이니 매출을 올린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러니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궁리 끝에 찾은 길이 바로 연대를 통한 새로운 방식의 자활공동체이다. 자활공동체 하나로는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 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지만 야베스공동체가 작은 공동체들의 연합체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야베스공동체를 중심으로 독립운영이 가능한 체인점들을 개설하고 그 체인점들을 함께 운영해 나간다면 하나의 블록을 형성할 수 있고, 이 블록이 한 몸이 되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장과 체인점을 하나로 묶어 야베스공동체 연대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얼마 전 국무총리실 사회복지정책과장이 벧엘의집을 방문하여 울안공동체, 희망진료센타, 야베스공동체를 둘러본 적이 있었다. 올해 국회에서 통과된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로 인해 정부에서 노숙인 지원 및 자활대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하여 앞으로 어떻게 하면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한지를 들어보기 위해서란다. 이 자리에서 나는 노숙인의 자활은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사회적 기업이나 사회적 일자리를 가지고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노숙인의 자활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과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야베스공동체와 같은 모체가 되는 사회적 기업은 장기간 국가의 지원을 통해 자활의 인큐베이팅 역할을 하고, 노숙인의 자활은 그 다음 단계인 기업과 체인점이라는 관계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야베스공동체와 같은 사회적 기업은 바로 자활센타와 같은 역할을 하고, 그 다음으로 뻗어 나가는 체인점들이 실제적인 자활의 장이 되어야 한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들이 경쟁시장에서 연대를 통해 살아남을 수 있으며 모체가 되는 사회적 기업도 그들과 연대함으로 경쟁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대를 통한 새로운 방식의 자활공동체인 것이다.

 예를 들어 울안공동체에 이 0 0 아저씨가 얼마 전 다시 입소하셨다. 이 분은 한 쪽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며, 체구는 왜소하여 노동능력도 보통사람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성실하다. 지난 기간 꽤 긴 기간 야베스공동체 숯부작 사업부에서 일을 하셨다. 그리고 꽤 많은 돈도 모았었다. 그리고는 어느 날 장사를 해 보겠다고 모아놓은 돈을 전부 찾아가지고는 울안공동체를 떠나셨다. 그런데 다시 오신 것이다. 이야기인즉 강원도에서 가서 모아놓은 돈으로 생선 장사를 했는데 장사의 경험도 없고, 남들만큼 체력도 안 되어 끝내는 그동안 모아놓았던 돈만 날리고 다시 오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 기존의 경쟁시장은 한 번 더 실패를 경험하는 곳 밖에 지나지 않다. 성실성 하나만 가지고는 체력도 안 되고, 남들만큼 영악하지 못한데 어떻게 경쟁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기에 이런 분들에게 무한 경쟁시장이 아닌 보호막이 있는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줄 때만이 실패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야베스공동체와 같은 사회적 기업이 이런 분들의 자활을 위한 보호막 역할을 한다면 어느 정도 자활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 야베스공동체는 자활의 끝이 아니다. 그러기에 비록 지금은 고되고 힘들어도 다시 힘을 내 자활의 열매들을 맺을 수 있도록 훈련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야베스 파이팅, 힘내자, 우리가 처음 세상을 향해 소리쳤던 공동체를 향해 한 발짝씩 걸음을 옮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