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그리고 어울림
쉼, 그리고 어울림
  • 백제뉴스
  • 승인 2011.08.1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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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벧엘의집 여름 수련회가 빈들교회와 함께 <쉼, 그리고 어울림> 이라는 주제로 장령산 휴양림에서 8월 1부터 3일까지 2박 3일간 있었다. 이번 여름 수련회가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위해 토론하고 다짐하던 것과는 다르게, 쉼과 어울림이라는 주제로 갖게 된 것은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짧은 시간이나마 휴식을 통해 돌아보고, 진정한 쉼이란 무엇이며, 어떤 삶의 모습이 참 평안을 누리는 삶이며, 쉼을 통해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발견하고, 내 주위 사람과 어울려서 서로를 깊이 알아가고, 서로를 이해하여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로 가 보자는 것이었다.

혹자는 노숙인 쉼터인 벧엘의집 식구들은 열심히 일해서 하루빨리 자활을 해야지 무슨 휴식이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이들의 삶에는 진정한 휴식이 없었다. 그저 가난에 쫓기고, 일에 쫓기고, 불안감에 쫓기는 등, 이들의 삶은 그저 쫓겨 다니는 삶이 전부였다. 그러기에 쉼을 통해 삶의 여유를 찾아 자활을 향해 새롭게 출발하자는 것이다. 쉼이 있어야 자활도 가능한 것이다. 또한 혹자는 수련회가 무슨 휴식이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쉰다는 것은 조용하게,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편안하게 쉴 수 있어야 하는데 수련회는 매 시간마다 짜여진 프로그램이 있고,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싫어도 꼭 참여해야 하고, 혼자 조용히 쉬고 싶어도 때론 집단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번 수련회는 나름대로 프로그램도 예전에 비해서는 느슨하게 짰고, 대부분 시간을 조용히 휴식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당초의 목표대로 정신없이 살아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모두들 편안히 쉬고, 더 많이 가까워졌는지 모르겠다.

현대사회에서 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여름휴가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 여름휴가는 휴식이 아니라 무슨 의무처럼 보인다. 때론 집에서 편안히 쉬고 싶은데 휴가를 다녀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학고, 어떤 이는 가족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는 휴가를 다녀오는 이들이 많다. 이렇게 떠난 휴가는 피서객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휴식보다는 고생길이 되는 경우가 많다. 피서지로 떠나는 차량으로 도로는 명절 때의 귀성행렬처럼 평소에 한 두 시간이면 되던 거리도 대여섯 시간은 거뜬히 걸리고, 피서지에서는 바가지요금에, 한꺼번에 몰린 피서인파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다. 이건 휴가가 아니라 고생길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휴가는 방콕(방에 콕 박혀 지낸 것)이 제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휴가도 휴식보다는 휴가를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의해 정신없이 보내는 것 같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또 한 가지 진풍경은 아침 출근 차량안의 모습이다. 출근 시간대의 버스나 지하철 안의 모습은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은 활력이 넘치고 생기 있는 모습이 아니라 대부분 차에 올라타서 자리를 잡고는 앉자마자 꾸벅꾸벅 졸다가 신기하게도 자신이 내려야 할 곳에 도달하면 어김없이 벌떡 일어나 차에서 내려 출근한다. 정말 현대인들은 여유가 전혀 없는 생활을 하는 것 같다. 삶이 전쟁과 흡사하다. 잠깐의 여유를 부릴 틈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야만 하는가? 때론 여유도 부리고, 쉬기도 하면서 살면 안 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왜 당신은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 가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내일을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오늘은 조금 고생스럽고 힘들어도 내일을 편안하게 지내기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이다. 정작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내일을 위해 우리는 오늘을 불을 향해 자신의 몸을 던져버리는 불나방처럼 온 정열을 쏟아내며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작 내일은 우리에게 오는 것일까? 영국의 역사학자 E. H. Carr는 과거는 지나간 현재이고, 미래는 다가올 현재라고 말했다. Carr의 말을 다르게 읽어보면 우리는 현재만을 사는 것이지 어제를 사는 것도 아니고, 내일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일을 위해서만 쫓기듯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이 없이는 내일이 없다. 즉 오늘의 만족이 없이는 내일의 만족도 없다. 그러기에 오늘을 만족할 수 있도록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일을 위한 최선이 아니라 오늘의 최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에 충실할 때만이 우리는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주위를 돌아보아볼 수 있을 때, 주위 사람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토마스 하디의 소설 ‘내일’에서처럼 아버지에게 아들이 ‘아버지! 아버지가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이 돌아왔어요.’ 라고 말할 때, 신음하듯 아버지는 여전히 부둣가에 나가서는 ‘내 아들은 내일 돌아온다.’ 라고 절규하는 것처럼 우리는 오지도 않을 내일에 중독되어 오늘을 만족하지 못하고, 쉼도 없이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을 만족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참 휴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기에 쉼은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을 만족하는 지혜인 것이다. 나아가 이런 지혜가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인“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는 말씀을 묵상하며 참 쉼의 지혜와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깨닫는다.